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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부활의 역설, 양화진에서 찾다[부활절 특집 인터뷰]필리핀 영농선교사 조보환 장로
조보환 선교사와 함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찾았다. 조 선교사는 아펜젤러 가족의 묘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 그리스도는 몸소 한 알의 밀이 되어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다. 그리고 죽어야 다시 사는 부활의 신비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예수 부활의 살아있는 열매 아니던가.

이 땅에 복음을 전했던 수많은 선교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의 나무에서 떨어진 또 하나의 씨앗이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의 사명을 완수하고 이 땅에 묻혔다.

부활주일을 맞아 필리핀에서 ‘영농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조보환 선교사와 함께 양화진 묘역을 찾았다. 농업 전문가인 조 선교사를 통해 ‘씨 뿌리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들어봤다.

 

봄기운이 완연한 양화진

동산 넘어 벚꽃이 만개하고 목련이 화려함을 과시하는, 그야말로 완연한 봄이었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하늘까지, 나들이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평일이라 참배객도 많지 않았다. 양화진은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양화진은 처음이라는 조 선교사와 함께 아펜젤러와 하디 등 이 땅에 복음을 전했던 선배 선교사들의 무덤을 천천히 돌아봤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 곳에 왔습니다. 그 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에 상륙하여 드렸다는 기도문은 울컥할 만큼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선교사들의 이런 기도와 헌신으로부터 이 땅에 복음의 역사가 시작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보환 선교사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조 선교사는 지난 2015년 강화도의 ‘어머니교회’로 잘 알려진 교산교회(담임 박기현 목사)에서 122주년 기념으로 파송한 1호 선교사다. 아펜젤러의 후배였던 존스 선교사로부터 ‘선상세례’를 받은 이승환에 의해 세워진 교산교회는 강화도의 첫 교회이자 인근 도서로 복음을 확산시킨 ‘전초기지’로서 자부심이 매우 높은 교회다.

교산교회로부터 시작된 복음의 역사는 이후 117개의 감리교회가 세워질 만큼 강력한 것이었지만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조보환 선교사가 처음이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는 묘비에는 그가 제물포항에 처음 들어와서 드렸던 기도가 담겨 보는 이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내 기도에 응답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기도응답이 이뤄지기만을 바라죠. 그러나 남의 기도에 응답되어서 내가 쓰임 받아보니 이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백발에 온화한 인상의 소유자인 조보환 선교사는 평생을 농업 전문가로 살았다. 1954년 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64살이다. 강화군 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은퇴 한 뒤 우연히 제주도 열방대학에서 실시하는 제자훈련에 참여했고, 그것을 계기로 늦은 나이지만 선교사로 헌신하게 됐다.

“퇴직하고 보니 지금껏 살아온 삶이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라는 찬양 가사가 와 닿았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그 전에는 은퇴하면 해외여행이나 부지런히 다니자고 했던 것이 뜻밖의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간의 제자훈련이 끝났을 무렵 책을 통해 은퇴 후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박운서 차관의 사연을 접하게 됐다. 김영삼 정부 당시 통상산업부 차관을 역임하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 데이콤 회장을 지낸 박운서 장로가 정년퇴임 후 필리핀의 오지에서 5만평의 땅을 사들여 벼농사를 짓고 그 쌀로 산족 아이들을 먹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사연에 감동을 받은 그는 무작정 박 전 차관을 파송한 교회를 찾아갔다. 놀랍게도 교회 주보에 “농업전문가를 찾는다”는 중보기도 제목이 적혀 있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구나. 내가 할 일이 여기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사천리로 현지탐방까지 다녀온 뒤 자비량 선교를 결심했다. 2015년 5월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뒤 그는 박운서 장로와 함께 모리아자립선교재단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남의 기도로 쓰임 받는 기쁨

그는 필리핀 안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민도로섬에서 원주민들을 위한 농장을 돌며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농사지을 토양에 따라 적합한 씨앗을 골라 심고 관리하는 일이 그의 사역의 주를 이룬다.

초기 6개월 동안은 정글 속에 13군데로 나뉜 교회와 5만평이 넘는 농장을 순회하며 토양을 조사하는데 집중했다. 대부분이 불모지와 같은 상황이었다. 2년여가 지난 지금은 모든 농장들이 완전히 정상화되어 해마다 적정 소출을 내고 있다. 농장에서 나오는 수입은 현지인 성도들의 주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빵과 함께 복음을’ 전한다는 구호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감사하다.

“내 기도에 응답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기도응답이 이뤄지기만을 바라죠. 그러나 남의 기도에 응답되어서 내가 쓰임 받아보니 이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조보환 선교사가 필리핀 현지에서 사역하는 모습.

“씨를 뿌려 놓으면 열매는 맺어집니다. 인간이 조급할 뿐이죠. 바로 기도응답이 오기도 하지만 어떤 기도는 아브라함의 기도처럼 1000년 후에나 응답되기도 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장은 안 보여도 기다리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됩니다.”

 

뿌리면 반드시 열매 맺는다

도심의 흔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구태여 양화진에서 만난 것은 조 선교사가 농업 전문가이기 때문이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일이 선교사역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으로 심겨진 선교사들에 대한 남다른 견해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조 선교사에게 어떻게 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씨를 뿌리면 열매는 반드시 맺는다는 것. “중요한 것은 좋은 씨앗을 엄선해서 뿌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선교사는 또 “기도를 했으면 다 받은 줄 알라는 말씀이 이해가 안 갔는데, 선교지에서 농사를 지어보니 그 말씀이 피부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씨앗을 뿌리면 어떤 채소는 열흘이면 수확이 가능하고 느린 것은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옥수수는 4개월, 포도나무는 3년, 사과는 5~7년이 걸린다.

“씨를 뿌려 놓으면 열매는 맺어집니다. 인간이 조급할 뿐이죠. 바로 기도응답이 오기도 하지만 어떤 기도는 아브라함의 기도처럼 1000년 후에나 응답되기도 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장은 안 보여도 기다리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됩니다. 조급해하면 안됩니다. 조급함이 양적 성장이라는 욕심이 되고 사람보다 건물을 세우는 우를 범하게 하죠. 뿌려지면 열매는 맺습니다. 인간은 씨를 뿌리고 관리만 하면 됩니다.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죠.”

언제까지 사역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하는 조 선교사. 그는 마지막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으로 왔던 선배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자신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사역에 전력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NEWS PLUS

부활절을 맞아 우리 곁에 가까운 선교 유적지를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특별히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되었던 선교사들의 묘원을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아래 소개하는 세 곳의 선교사 묘원은 봄을 맞아 만물이 생명력으로 넘치는 요즘 부활의 기쁨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양화진에 자리하고 있는 하디 선교사의 묘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

양화진은 지리적으로 노량진과 동작진, 한강진, 송파진과 함께 서울의 5진(津)이라 불리던 주요 나루터 중 하나다. 인천을 비롯해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해상통로의 전진기지로써 서울의 관문 역할을 했던만큼 외국인 선교사들 역시 이곳을 통해 복음을 들고 전국으로 나갔다.

양화진외국인묘원은 원래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충북선교의 대부라 불리는 밀러 목사가 언더우드 선교사, 에비슨 선교사 등과 함께 공동으로 미화 75달러에 별장용지를 구입하여 지금의 묘역 주변에 각각 방갈로를 짓고 여름을 보냈다.

그러던 중 1890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선교사인 존 헤론이 급환으로 죽게되면서 양화진 근방의 빈터에 묻힌다. 조선정부의 허락을 받은 헤론이 맨 처음 이곳에 묻힌 이후 외국인 묘지로 조성됐고 이후 15개 나라 417명의 외국인들이 안장됐고, 따로 7개 나라 145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도 묻히게 됐다. 1984년까지는 쓰레기와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지만 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기념관과 기념사업을 추진하였고 2006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정식 명칭이 부여됐다. 특히 아펜젤러 가족의 묘와 셔우드 홀, 윌리엄 쇼, 매리 스크랜턴 등 미국 감리회 파송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어 꼭 한번 들러볼만한 선교 유적지다.

 

광주 양림동 외국인 선교사 묘역(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광주 양림동에 자리한 외국인 선교사 묘역. 이곳에는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 묻혀 있다.

광주 광역시 양림산 일대에 자리한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원래 어린아이가 죽으면 묻는 공동묘지였다가, 1904년 선교사들이 터를 잡으면서 호남선교의 중심지가 됐다. 이 곳에는 주로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의 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광주에 선교부를 세우고 30년간 한국 복음화를 위해 살다가 주님의 품에 안긴 선교사들과 가족 등 22명의 미국인이 묻혀 있다.

오웬과 유진 벨, 쉐핑 등이 대표적인데 2010년에 23기의 선교사 기념비가 추가되면서 총 45개의 비석이 있다.

 

전주 외국인 선교사 묘역(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1가 산 40-1)

전주 예수병원 건너편 언덕에 위치한 선교사 묘역. 다른 묘역에 비해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전주에는 호남지방 선교의 초석이 된 윌리암 전킨(전위렴)을 비롯하여 1898년 전주예수병원을 세운 매티 잉골드 여사 등 15명의 선교사 묘비와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전주예수병원 건너편 언덕에 위치한 묘역은 광주 양림동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다.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묘지 아래편에 예수병원 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들러볼만 하다. 이곳에서는 예수병원과 호남 지역 기독교 전파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손동준 기자  djson@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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