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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 살고 있습니까, 내 멋대로 교리로 살고 있습니까뮤지컬 ‘더 북’(The Book), 위정자들의 거짓된 ‘신앙과 삶’을 찌르다
오늘 우리에게 성경이 존재하기까지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생생히 다룬 뮤지컬 ‘더 북’은 현대인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올해 12월까지 이어지는 뮤지컬 ‘더 북’은 서울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마다 무대를 열고 있다.


“성경 말씀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사람 중에 진정 ‘성경대로’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혹시 성경대로 살고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가 정해 놓은 성경의 기준대로, 혹은 성경을 와전해 적용하거나 나만의 합리적 기준으로 해석해 “나는 성경 말씀대로 산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뮤지컬 ‘더 북(The Book)’을 관람하다보면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이전보다 편해진 신앙생활 환경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뮤지컬 ‘더 북’은 그 허를 찌르는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나 세속적이고 변질된 기독교 신앙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진실로 성경대로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뮤지컬 ‘더 북’은 15세기 초, 가톨릭이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 암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톨릭 교회의 제도와 관행을 따라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속임에 속으며 살던 세상이었다. 교황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이었고, 가톨릭 교회의 수장들이 내세운 교리가 곧 삶의 모든 기준과 법이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작은 마을 노리치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세 가톨릭 교회는 그들을 이단이라 치부하고 ‘롤라드’라고 부르며 진압에 나선다.

가톨릭 교회는 롤라드를 왜 이단이라고 치부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라틴어로 된 성경의 영어 번역을 금하는 가톨릭 교회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배운 사제들만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고 익힐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경을 독보적인 권력 수단으로 삼았던 가톨릭 교회는 일반 평민들을 군림하려고 했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을 무참히 가려버리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오직 사제들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하고, 면죄부를 사야만 가능하다는 잘못된 교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영어로 번역된 성경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살인을 주저하지 않았던 가톨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롤라드들은 성경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성경 한 권씩 외워 광장에서 외쳤던 ‘성경이 된 사람들’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전 세계가 루터의 이야기나 종교개혁 신앙을 조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새로운 종교개혁을 외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왜’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껏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 500년 전 마틴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타락을 고발하고 구원과 은총에 관한 당시의 신학적 교리를 비판하기 위해 독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개혁해야 하고, 왜 개혁해야 하는 것일까. 뮤지컬 ‘더 북’은 그 대상은 바로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더욱 진실되어야 함을 고한다.

뮤지컬 ‘더 북’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예수님을 배경 삼아 허우대만 높이려 허거나 말씀의 권위를 세상의 권력으로 삼아 군림하려는 자, 말씀으로 교리를 내세워 가르치려는 자와 반대로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는 자,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하며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려는 자 등. 등장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십자가를 내세워 위선적이지 않았는지, 십자가를 등지고 내 몫만 챙기기 바쁘지 않았는지, 십자가 밑에서 진정으로 눈물을 흘렸던 적은 언제였는지 묻는다.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교리로 가려진 복음에서 성경의 참 진리를 깨닫게 된 영국 노리치 마을 사람들은 진정으로 말씀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부와 권력으로 지배당하는 것을 비롯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교리 그리고 돈과 고해로 죄가 사해진다는 거짓말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들이 성경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모할 수 없었고, 성경을 읽을 수 없어 예수님의 십자가 핏값을 알지 못했다면,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어떠한가. 스스로를 먼저 교리에 가두고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헌금했기 때문에, 회개기도했기 때문에, 목사이기 때문에, 성도이기 때문에 성경을 되려 터부시하며 살 때가 많이 있지 않은가. 왜 우리는 그들처럼 잘못된 신앙생활을 거부하지 못 하는 걸까.

마틴 루터의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기 1세기 전, 이미 존재했던 종교개혁의 마중물 ‘롤라드’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했지만 결코 진리와 믿음을 지키는 일에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들, 오늘을 사는 우리 안에도 ‘롤라드’가 존재한다면 이 시대의 개혁이 되지 않을까.

김목화 기자  yesmoka@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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