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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청와대 가냐?"스스로를 지키는 일, 어렵지 않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지난 10일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일곱 번째 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선거기간 중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이름을 ‘더불어민주당 정부’로 명명하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앞선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종결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국정 철학을 ‘비선'이 아닌 ‘정당정치’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새 정부의 의지를 무색하게 하듯 요즘 교계에서는 “너도 청와대 가냐?”는 인사가 새로운 유행어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교회가 정치권력에 보여준 태도는 현대사에서 정권이 바뀌는 순간마다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자초한 대로 어떤 정권도 한국교회를 국가나 사회의 가치를 지탱해주는 절개 있는 집단으로도 대하지 않았다. 그저 잘 달래 주면 쉽게 웃음 짓고, 스스로 머리를 숙이는 무리들 정도로 대해왔을 뿐이다.

‘우리는 먼저 역사를 알아야합니다’라는 한 역사 강사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원인과 뿌리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데, 이것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해답까지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명제는 그리 쉽지 않다. 지나간 역사는 우리에게 결코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객관적 사실에 대한 진술로서의 역사라 해도 그것에 대한 해석과 의미는 좌우 극단에 선 만큼이나 다르다. 소위 역사를 안다는 많은 이들 중 현실 속 미궁을 떠도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역사에 대한 해석은 역사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기를 요구 당하는데,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역사적이다. 2000년 전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앙은 철저하게 역사를 통해서 이어져 왔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하면서 기독교는 박해에 종지부를 찍고 제국의 종교로 등장하는 역사의 첫 빗장을 열었다. 그 후 기독교는 로마의 정치권력과 운명을 같이하며 제국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롯해 수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기독교는 정치권력과 분리할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정치권력은 통치 수단으로 종교를 필요로 하고 종교는 정치권력에 기대서 이권을 챙기는 기생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적폐청산’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들어선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무엇을 제시하게 될지 궁금하다. 지난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 왔던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 아니면 ‘1000만 기독교 인구’라는 다수의 논리를 내세워 새로운 정부에 줄을 설 것인지 말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종로 5가에서는 이미 비선실세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2000년 교회사가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교회가 정치권력의 가치를 변호해 주거나 권력에 기생하려 할 때마다 교회는 그 생명력을 상실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정치권력의 하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종교가 종교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지키려면 정치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최고 목표와 가치를 ‘정권창출’과 ‘힘’에 둔 정치권력과 ‘사랑’과 ‘희생’을 근본으로 하는 기독교가 서로 목표를 공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할 때 비로소 정치권력을 하나님의 가치에 따라 책망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 한국교회는 모름지기 이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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