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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몽과 민족운동으로 ‘유리천장’ 극복신여성 대명사 ‘하란사’ 재조명
올해 말까지 서울교육박물관서 특별전시
교육계몽과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신여성 하란사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150여 년 전,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름도 없이 살아가던 시대에 적극적인 사회 참여로 ‘유리천장’을 깨트린 여성이 있었다. 한국 여성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알려진 하란사(河蘭史,1875~1919년)이다. 교육에 목말라 이화학당을 찾은 하란사는 기혼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차례 거절을 당했다. 거절 사유를 말하는 학장 앞에서 등불을 끄며 “내 인생이 이렇게 한밤중처럼 캄캄합니다. 내게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신여성의 대명사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하란사의 삶이 재조명 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란사의 유가족 김용택(69세) 씨는 하란사의 역사적 기록 일부가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하란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특별전시 '신여성 김란사 세상을 밝히다'가 올해말까지 종로에 위치한 서울교육박물관에서 열린다.

“기생출신, 첩이라는 기록은 오기”

자신을 하란사 남동생의 손자라고 소개한 김용택 씨는 “할머니가 기생출신, 첩이라는 기록은 잘못됐다”며 “무역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풍족하게 살다가 21살 나이에 하상기와 결혼했다. 이후 한국 여성 최초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립운동에도 앞장선 분”이라고 밝혔다.

김 씨에 따르면 하란사는 1872년 평양에서 부친인 김병훈과 모친인 이 씨의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모님을 따라 서울 평동으로 이사해 아버지의 무역업을 도왔으며, 부모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인천 감리(조선 말기 감리서의 주임관)였던 하상기와 1893년에 결혼 후 이화학당에 입학했다.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자 일본 유학을 떠났던 하란사는 여성 평등과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서재필의 강연을 듣고 미국 유학을 결심,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교에서 문학사(B.L)를 한국 여성 최초로 취득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이화학당을 중심으로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했다. 상동교회 전도부인학원, 정동교회 성도로서 선교활동에 앞장서는 등 교육과 선교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유관순의 스승으로 이화학당 학생자치단체 이문회를 지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국제 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자 1919년 초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다가 1919년 4월 북경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1995년에는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김용택 씨는 “할머니가 기생출신으로 하상기의 첩이었다는 설은 모함이다. 역사적 검증 없이 한 번 쓰인 글이 기록이 됐다. 할머니는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고, 결혼도 하상기의 전처가 사망한 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름도 하란사가 아닌 김란사로 수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관도 본래 알려진 김해 김씨가 아닌 전주 김씨이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 남편 성을 따랐던 것이 지금까지 ‘하란사’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출생 연도도 일반적인 기록인 1875년이 아닌 1872년이라며 “1897년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 입국카드에 1872년으로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김용택 씨는 하란사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기록을 바로잡기 위해 수년간 발로 뛰고 있다. 올해 말까지 서울교육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신여성 김란사 세상을 밝히다’를 통해 하란사의 삶을 관객들에게 소상히 알리고 있다.

하란사는 지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유리천장 깨트린 최초의 여성

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 고혜령 박사가 이런 김용택 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해 ‘꺼진 등에 불을 켜라’는 제목으로 하란사의 일대기를 펴낸 고 박사는 그녀의 책에서 “웨슬리언대학 자료에서 영어명인 ‘낸시(Nancy)’라 하지 않고, 모두 ‘난사(Nansa)’라고 표기한 것으로 보아, 란사가 원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하란사의 원래 이름인 김란사를 찾아주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고 박사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이며 똑같은 교육을 받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존재임을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 실천했다”며 “교육과 선교를 통한 진정한 여성 해방 운동, 조선의 독립을 찾기 위한 구국 활동을 펼치다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은 그녀의 치열한 삶은 안정과 번영 속에 안주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자성의 시간을 안겨준다”고 평가했다.

하란사의 재조명에 대해 이덕주 교수(감신대)는 “지금까지 그 분에 대한 자료는 1960년대 나온 책이 유일했다. 발굴과 공개 부족으로 검증이 충분하지 못해 추측에 의한 기록이 반복 됐는데, 후손들이 뒤늦게 발굴해서 교정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반가움을 표했다.

이 교수는 “최근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지명되며 화제가 되고 있는데, 하란사는 유리천장을 깨트린 최초의 여성”이라며 “봉건사회 속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한계와 굴레를 깨트렸다”고 소개했다.

또 “교육계몽에서 끝나지 않고 남성들도 두려워했던 민족운동의 한계를 넘어 망명운동에도 가담해,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영역까지 자기의 능력을 발휘했던 여성이었다”며 “현대 교회 여성들에게 본이 되는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가한나 기자  hanna@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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