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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관한 단초박정인 목사(하늘씨앗교회)
'용서에 대하여' 강남순 지음, 동녘출판.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이 한 마디는 ‘세상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 세상의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에서 나온 모순(矛盾)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말이지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으며, 용서한 것이 어떻게 용서할 수 없는 것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모순으로 보이는 이 말이 우리 마음에 계속적인 울림으로 남는 것은 이미 우리 삶에서 만났고,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용서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이고, 용서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용서’는 도망 가려해도 도망 갈 수 없이 우리 삶의 전 기간에 걸쳐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일이겠지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의 육하원칙처럼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용서인가?” “언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에 전제조건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작은 대답 아니, 생각의 단초를 던지는 책이 ‘용서에 대하여’라는 강남순 교수님의 책입니다.

이 책의 부제인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묻고 있듯 용서는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한 일이지요. 그리고 그 불가능성은 어쩌면 우리 존재의 한계에 기인한 것으로 우리 자신을 존재의 겸손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늘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잘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가끔 하는 용서마저도 저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게다가 용서하는 척만 한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가끔 용서를 망각(妄覺)으로 착각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특히 자기 용서와 정치적 용서의 부분에서 망각을 용서로 대체하는 경우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마찬가지이지요.

저자는 “용서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하나는 ‘진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억’이다”라고 합니다. 진실을 밝히지 않고 과거라는 이유, 아프다는 이유로 덮어버리는 것으로는 속에서 계속해서 부패해갈 뿐 새로운 출발로 가지 못할 것이고, 지나갔으니 얽매이지 않기 위해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면 역사를 통해 발전해온 인류사를 부정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진실보다, 기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용서라고 그래서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용서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여정에서 계속해야 할 일이라면 ‘진실’과 ‘기억’을 통해 용서해감으로써 새로운 삶,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지 않을 런지요.

프롤로그에 나온 짧은 글이 우리 삶의 여정에서 ‘용서’에 대하여 가져야할 마음이 아닐까 하여 소개드립니다.
“용서, 그것은 쉽지 않다. 쉽다면 논의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것이다.” -토니 커시너 Tonny Kush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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