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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침묵에 핑계란 없다

감리회 사태 당시 익명으로도 현실을 비판할 용기가 없던 기성세대의 ‘노련함’을 답습해서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비판하는 그릇된 의회제도 속에 오랜 시간 순응해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의 침묵을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본지가 지난달 27일부터 나흘간 온라인을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0·40대(50대 이하) 감리회 목회자들은 현재의 의회구조 속에서 의견을 전달할 기회가 매우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서 ‘현재 감리회 의회구조에서 젊은 목회자들의 요구를 전달할 기회 정도’를 묻는 질문에 ’부족하다’는 응답이 무려 99.1%(‘매우 반영되지 않고 있다’ 72.6%,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26.5%)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같은 질문에서 젊은 목회자들의 언로가 ‘잘 마련돼 있다’는 응답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다소 반영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체 응답자 219명(참여 222명) 가운데 2명(0.9%)에 불과했다.

감리회 의회구조에 대한 30·40 목회자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여실히 드러났다. ‘감리회 의회구조에 대한 인식과 참여 정도’를 묻는 질문에 ‘수긍할 수 없지만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이 59.2%, ‘수긍할 수 없고 참여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8%를 차지하는 등 부정적인 응답이 67%에 달했다. ‘다소 이해하며 참여한다’는 29.4%, ‘깊이 공감하며 동참한다’는 3.7%였다.

또 응답자 10명 중 7명이 현재 감리회 의회구조에 대해 ‘매우 권위적이며 경직돼 있다’(70.3%)고 답했고 27.4%가 ‘민주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다’고 답했다. 둘을 합치면 무려 97.7%다. ‘민주적인 측면은 떨어지나 성경적’이라는 응답은 2.3%였고, ‘매우 민주적이고 성경적’이라는 응답은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현재 감리회 의회구조는 젊은 목회자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0.7%,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45.2%였다. ‘다소 존중하고 있다’는 4.1%로 나타난 반면 ‘매우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며 적극 존중하고 있다’는 응답은 단 한 명도(0%) 없었다.

현재 정회원 11년급 이상으로 돼 있는 감독 및 감독회장 선거권 허용에 대한 질문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선거권과 관련해 ‘매우 문제가 있으며 변경이 시급하다’는 답이 52.5%로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수긍하기 어렵다’(26.5%) ‘어느 정도 수긍할만하다’(19.6%), ‘매우 합당하다’(1.4%) 순이었다.

특히 마지막 질문으로 ‘현재의 기준으로 10년 후 감리회의 상황’을 물었더니 단 한 명도 10년 뒤 감리교회가 ‘매우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지 않았다. ‘매우 쇠퇴할 것’이라는 응답이 58.9%였고, ‘다소 쇠퇴할 것’이라는 응답도 31.1%에 달했다. ‘정체될 것’이라는 응답은 9.6%, ‘어느 정도 성장할 것’이라는 응답은 0.5%였다. 감리회가 취하고 있는 젊은 목회자들의 요구와 현실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답변이 82.2%(매우 외면 67.6%+다소 외면 14.6%)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결과는 30·40 목회자들의 감리회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충격적인 결과 같지만 사실 이미 예견된 결과나 다름없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놀랍지 않다 해도,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절대 다수가 ‘불의’라고 인식하고도 침묵할 수 있는 30·40 목회자들의 태도이다. 감리회 사태 당시 익명으로도 현실을 비판할 용기가 없던 기성세대의 ‘노련함’을 답습해서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비판하는 그릇된 의회제도 속에 오랜 시간 순응해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의 침묵을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존 웨슬리는 35세가 되던 해인 1738년 5월 회심한 뒤 성령에 사로잡힌 설교로 놀라운 역사를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성령에 사로잡힌 설교 이면에는 그의 설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던진 돌을 맞아 설교 중 세 번이나 쓰러지고 60차례에 걸쳐 폭력을 당하고도 멈추지 않고 설교를 지속했고, 야외로 나가서도 설교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739년 11월, 36세 되던 해에 대포공장을 개조한 예배당을 발판으로 감리교회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

칼빈 역시 26세 되던 해인 1535년 ‘기독교강요’를 완성했지만 사상에만 머물지 않고 이듬해 제네바로 들어가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2년여의 노력에도 불구 첫 개혁운동은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32세 되던 1541년, 제네바로 다시 돌아가 두 번째 개혁운동을 결국 성공시켰다.

가톨릭교회 수사였던 루터는 34세 되던 1517년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 앞에 ‘95개 논제’를 내걸어 기존교회와의 본격적인 논쟁을 시작했고, 이것이 우리가 아는 종교개혁의 시작이며 올해가 바로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세례 요한은 30세가 되던 해부터 요르단 강가에서 지내며 말씀을 전하며 세례를 베풀었고, 헤롯왕의 부패를 비판하다 처형당했다.

주님을 만난 개혁가들은 모두 믿음대로 실천했고, 예외 없이 그들의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등 뒤에 숨은 말은 불평으로 끝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목숨을 걸고 실천하면 역사가 된다.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기독교타임즈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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