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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논란 속 더욱 빛나는 교회② '을(乙)'의 자리로 내려간 교회들

공관병에 대한 4성 장군 부부의 갑질 횡포, 운전기사를 향한 대기업 회장의 상습적인 폭언. 지난 기사(951호)에서 계속되는 갑질 논란 속에 교회 내의 갑질 문화는 없는지 현실과 과제를 점검했다. 이번에는 갑질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을의 모습을 실천하는 교회를 소개하고,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갑질 논란 속 다시 돋보이는 ‘목사사용설명서’

지난해 SNS를 통해 화제가 된 '목사사용설명서'의 모습.

지난해 시골의 조그만 교회를 담임하는 한 목회자의 글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는 △보일러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등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을 달라는 내용에서부터,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으면 전화합니다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전화합니다 등 일꾼을 자처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도움을 청합니다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 바로 전화합니다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합니다 등에서는 마치 홀로 계신 부모님을 걱정하는 자식의 마음까지 느껴졌다. 글에 나열된 총 10개의 항목 중 압권은 마지막이었다.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 이쯤 되자 목사가 쓴 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감리회 목회자인 충북 영동 물한계곡교회 김선주 목사는 당시 이러한 내용이 담긴 전도지(본인은 ‘찌라시’라고 지칭)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전화기 옆에 붙여놓으라고 말했다. 주민 대부분이 80대 전후의 노인인 것을 감안해 김 목사가 마련한 이 작은 찌라시(?) 한 장에는 지역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그의 바람이 녹아있었다.

이후 김 목사가 ‘목사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을 붙여 자신의 SNS를 통해 전도지 사진과 함께 사연을 공개하자 지인과 주변의 기독교인들을 넘어 그가 알지 못하는 비기독인들에게까지 빠르게 확산됐고, 교회의 선한 소식으로 일반 언론에 앞다투어 보도되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섬김을 몸소 실천한 목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회의 참 모습’, ‘근래 보기 드문 기독교의 훈훈함’ 등의 댓글을 연신 쏟아내며 호응했다. 말로는 줄기차게 섬김과 봉사를 외치면서도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한국교회의 모습에 실망했던 사람들은 모처럼 만난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에 잔잔한 울림을 경험했다.

김선주 목사는 지역의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은 마을 보수에 참여해 시멘트 작업을 하고 있는 김 목사의 모습.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나 지금 ‘갑질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교회는 여전히 질타와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물한계곡교회와 김선주 목사는 과연 최초 바람대로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하는 교회가 됐을까.

갑질 논란으로 한창 세상이 시끄럽던 지난 9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김 목사는 기자의 전화를 받자마자 “마을 한 어르신의 밭에서 복숭아 수확을 돕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든 팔을 걷고 나섰다. 그러나 대부분 실제로 연락이나 도움 요청이 있었다기보다 그가 자발적으로 찾아 나선 경우다.

김 목사는 “애초에 마을 어르신들이 이 글을 보고 내게 도움을 구할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해당 문구들을 읽을 때마다 목사가 당신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게 하고 싶었다”며 “글을 통해서 진정성은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목사가 교회라는 분리된 공간 안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같이 울고 웃고 하는 사람이구나’하는 측면에서 공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가 끊임없이 다가가다 보니 이제는 주민들도 수시로 편하게 교회를 찾는다. 비록 모두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는 것은 아니더라도 교회 행사가 있을 때면 작은 일이라도 도와주러 나오는 어르신들에서부터 고민을 들고 목사를 만나기 위해 온 젊은이들까지, 교회가 세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자 세상의 삶의 갖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김 목사는 이러한 모습에 대해 ‘교회의 마을화’라고 명명했다. 교회와 마을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교회가 세상과 너무 분리돼 있다. 우리 안에서는 은혜가 넘치는데 밖에 나가면 세상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제부터라도 교회가 세상과 분리된 것이 아니고 도덕 가치관 속에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임을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한국교회가 ‘섬김’이라는 표현을 지나치게 상투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말과 이벤트보다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기를 당부했다.

김 목사는 “교회가 점점 세상과 멀어지다보니까 거룩한 척 갑질을 하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갑질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교회가 세상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께도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준모 목사(왼쪽)가 에어컨 설치 후 경비실을 찾아 경비원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 두 사람 뒤로 새롭게 설치된 에어컨이 보인다.

폭염 지친 경비원에 ‘에어컨’ 선물한 교회

한편 지난해 이맘때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사건이 하나 있다. SNS를 통해서 알려진 ‘경비실 에어컨 설치 찬반 논란’이 바로 그것. 한 아파트에서 폭염에 대비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주자는 의견이 제기됐으나 입주민 대표자회의 결과 ‘관리비가 오른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비단 한 아파트의 사례만이 아니었고, SNS와 언론 등을 통해 전국의 비슷한 사례들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경비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또 하나의 갑질 사례로 자리잡았다. 올해 역시 계속되는 폭염 속에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한 교회가 같은 이유로 에어컨 설치를 거부한 아파트 입주민들을 대신해 에어컨을 구매, 기증한 일이 알려져 눈길을 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해인교회에서 공동목회를 하고 있는 이준모 목사는 최근 게시판에 붙은 입주자 대표 회의 결과를 보고 자신의 아파트에서도 말로만 듣던 경비실 갑질이 행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더위에 경비실 에어컨 설치가 안건으로 올랐으나, 물가 인상과 전기세 부담 등의 의견이 제기돼 부결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소식을 접한 즉시 아파트 관리실을 통해 에어컨 구입비용을 교회에서 감당할 테니 해당 안건을 다시 회의에 상정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결국 아파트는 전기세를 부담하기로 하면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 승인을 받았다.

이 목사는 “수년전 교회 근처 쪽방촌에 거주하는 한 어르신이 무더위에 숨지는 일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날 이후 교회는 7~8월이 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동일 선상에서 대부분 연로한 경비원들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한 현실에 에어컨을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에어컨 설치 이후 경비원들이 무안할 정도로 교회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면서 “오히려 에어컨을 켜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에 내가 더 감사했다”고 전했다.

해인교회는 매월 교회 예산의 10분의 1을 선교 기금으로 별도 책정해 지역의 어려운 이웃이나 시민사회단체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경우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제도는 처음 교회가 세워진 1994년 이후 20년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그는 “우리 교회의 모토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실천하자’이다. 최근 갑질 논란에 연루된 기독교인들의 소식이 알려지며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드러났는데, 원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예수님의 그것과 닮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며 “직접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께서는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느니라’(마 26:52)고 하셨다. 한국교회에 ‘권력을 부리면 권력으로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간 데 대해 한국교회가 가슴을 뜯으며 회개하는 한편,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 닮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사회를 섬겨나갈 것을 당부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갑질 횡포 소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말씀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한국교회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의 주인 되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와 철저한 을의 삶을 사셨다. 지금이야 말로 갑의 자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한국교회에서 벗어나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때이다.

정원희 기자  whjung@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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