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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 더 사랑한 푸른눈의 한국혼"헐버트 선교사 68주기 추모예배
지난 11일 열린 헐버트 선교사 서거 68주기 추모식에서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감리회 선교사로서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헐버트 박사의 애국정신을 기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1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진행된 헐버트 선교사 서거 68주기 추모식에는 정계와 교계를 비롯해 각계인사들과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 대리 등 고인을 기리기 위해 모인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외국인임에도 독립유공자로서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과 금관문화훈장 서훈을 받은 인물인 만큼 본식에 앞서 한국과 미국 양국 국가가 차례로 연주됐다.

식사를 전한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은 “헐버트 박사는 젊은 나이에 이 땅에 와 조선 청년들에게 근대사상을 고취시키고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라며 “자신의 모국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정의와 인간애라는 인류 공존을 위한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올바른 애국’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경제, 외교적으로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먼저 애국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면서 “헐버트 박사가 주창한 ‘올바른 애국심’이 국민들 가슴속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 사회가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추모사를 전한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 대리는 “헐버트 박사는 조선의 독립과 민주화 위해 노력한 인물로서 위대한 선교사이자 교사, 독립운동가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오늘날 이렇게 굳건한 한·미동맹이 있기까지는 고인의 업적이 그 바탕이 됐다”면서 “북한의 계속된 위협 속에서도 헐버트 박사의 유지를 잘 이어받아 한국과 미국이 계속해서 끈끈한 관계를 이러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추모식에서는 고인의 약력 보고에 이어 생애와 업적이 담긴 영상 시청이 이어졌고, 헐버트 박사가 서양식 악보로 최초 채록한 아리랑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특별히 이날 헐버트에 의해 114년 전 제작된 거북선 모형이 최초 공개돼 관심을 끌었다.

이 거북선 모형은 한국의 문화유산에 매료된 헐버트 목사가 한국의 세계적 발명품을 국제사회에 소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 출품을 목적으로 1903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시회에서는 전시관 부족으로 전시를 거부당했고, 헐버트 박사는 이를 두고 평생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한다. 거북선 모형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미국에 있다가 해양유물수집가 전우홍 선생에 의해 한 세기가 넘어 한국에 돌아왔고, 이번에 대중 앞에 처음 선보이게 된 것이다.

한편 헐버트 선교사는 1886년, 23세의 나이로 내한해 근대 국립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893년에는 감리회 선교사로 재 내한해 동대문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고, YMCA 창립을 주도한 바 있다. 을사조약 이후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헤이그 특사 파견 당시에는 세계에 일본의 불법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지난 1949년 대한민국 국빈 초청으로 40년 만에 한국에 귀환했지만 내한 일주일만에 여독으로 별세해 최초의 외국인 사회장 거행 후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듬해인 1950년 정부는 고인의 업적을 기려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태극장)’을 추서했다.

정원희 기자  whjung@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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