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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의인’이 주는 교훈

6월 23일 오후 3시 40분.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로 305 앞길. 초등학생 4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쿵 소리와 함께 한 아이가 차에 치여 쓰러졌지만 3명의 아이는 무사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가장 먼저 발견한 백령초등학교 2학년 강산(9세) 군이 함께 걷던 친구 3명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산 군 자신은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실로 옮겨졌지만, 폐 일부와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을 회복한 아이는 절단된 자신의 다리보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무사한지를 물었다.

각박하고 이기적인 사회에서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 같은 의인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준다. 어린 강산 군의 소식에 사람들의 사회적 격려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불의를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어른들, 자신의 잘못을 덮기에만 급급한 지도자들이 넘쳐나는 세태 속에서 강산 군의 행동은 모든 공복의 표상이 되고 있다.

희생과 섬김의 실천 없는 ‘말’ 뿐인 위선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기에 예수님은 언제나 낮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시며 권력자들을 비판하셨고,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몸소 당하셨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통해 감춰진 교만을 드러내셨고, 어린이는 감춰진 교만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았다. 세상 역시 낮고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어린이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살피며 지도자의 자격을 검증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밖에 모르는 교만한 어른들을 향해 먼저 어린아이같이 될 것을 주문하셨다.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로 높은 체하며 논쟁하는 제자들에게는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 안으시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고 꾸짖으셨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풍요로운 대한민국 속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교만하다. 교인은 높은 학력과 지위, 그리고 부유함으로 세상 속에서 더욱 높아지려 발버둥 치고 있고, 목회자는 교인의 권력과 부를 기반으로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각종 선거에 매몰돼 있다. 여기에 권력의 부스러기를 탐하는 목회자·평신도가 이들 주변을 둘러싼 채 서성이고 있으니 하나님과 세상의 시험, 그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다. 강산 군 같은 어른이 부재한 오늘의 한국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잃은 이유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예수님이 활동하신 헬라 문명에서 겸손은 곧 노예의 윤리였다. 밑바닥 윤리를 받아들여야만 알 수 있는 겸손을 이미 높아졌거나 군림하려는 태도로는 알 길이 없다. 그저 예수님처럼 자신을 늘 낮추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세상 가운데 섬김과 희생을 증언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의인이 사라진 교인 1000만 명 시대, 복음의 능력이 더는 ‘전도’와 ‘선교’, ‘부흥’이라는 숫자가 아닌,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의 ‘섬김’과 ‘희생’ 정신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의’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백령도 ‘꼬마 영웅’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은 장애인으로 살아가게 되더라도 친구들의 목숨을 살려야겠다는 강산 군의 영웅적 희생과 세상을 녹이는 감동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이유다.

기독교타임즈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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