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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족교회를 본 후에 나눈 대화서울연회 도봉지방 이민재 감리사
   
 

성가족교회는 그 건축물 자체도 작품으로서 참 훌륭하다. 전체적인 것을  설계하는 것 자체도 특별하다. 세부사항 하나 하나 의미있다. 전체를 다 생각에서 건축해 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창의성 속에서 나왔다. 머리보다는 전존재와 영혼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머리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번 감리사 해외연수 기간을 통해서 가우디 만난 것 자체가 큰 감격이며 충격이다. 이런 사람이 다 있는가? 반가움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현대 영성가들로 토마스 머튼, 헨리나우웬은 말하며 왜 가우디를 말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본 것은 가우디란 인간의 경건이다. 건축가의 실력과 창의성은 기본이다. 전문성을 통해 표출된 기독교영성의 깊이가 표출된다. 거기에서 가우디가 천재적이다라는 이야기있지만 나는 이 사람은 장난기,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이것은 사실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핵심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장난스러운 분이다. 유머감각이 있는 분이다. 개를 보더라도 인간이 쓰는 언어, 사고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나름의 유머감각이있다. 왜? 하나님이 그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색체, 건축에 담아내고자 했던 하나님의 피조물의 몸짓과 표정이 참 좋다. 사실  하나님의 유머감각의 압권이 성육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 초월적,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다. 최고, 최상의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세상에 오는 모습이 어떤가? 모세에게 나타나는 현존은 불, 구름에서...기독교 하나님 현존방식은 방긋웃는 아가의 모습이다. 왕궁도 아니고 마굿간이며,  구유에서 나타나셨다. 이것이 하나님 임재의 결정적 방식이다. 이렇게 임재할 수가 없다. 거룩 엄숙함과 함께, 그리고 그를 넘어선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현존방식은 재미있다. 하나님의 해학이다. 나는 가우디에서 이것을 본다. 그는 천재 보다도 재미있는 사람, 유머있는 사람, 하나님의 영성을 지닌 사람이다. 예수님이 말한 어린이 답다!에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책을 두 권 샀다. 과제처럼 다가온다. 멋진 사람을 만났다. 나는 스페인 여행은 이미 다했다. 아주 소중한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심성과 눈높이를 맞춘 가우디가 참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영어로 된 화보집을 한 권 샀다. 손녀와 함께 보고 이야기 해 줄 생각이다. 
가우디가 애같다. 어린이답다. 그에게 장난기가 있다. 성당 안에서 스테인글라스. 빛이 비치는데, 이런 인간이 다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베 마리아 음악이 들려올 때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천정이 안개처럼 보였다.

가우디를 능가하는 작가는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난기있는 어린이답고 유머있는 영성가적인 건축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 주간 기독교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는이런 자의 것이니라'는 주제의 글을 써넣고 왔다. 

최근의 경험이다. 손녀 돌잔치를 양가어른들과 함께 조촐하게 가졌다. 원탁에서 식사, 대화를 나눴다. 잔치의 시작과 끝이 돌을 맞은 아이에게 맞춰졌다. 아이가 잼잼하면 어른들 모두가 좋아하고. 이 경험 후에 왜 어린아이 한 아이에게 8명의 어른이 집중할까?

첫째는 핏줄, 둘째는 손녀. 아이들을 보면 괜히 그 앞에서 체통을 지키지 않고 나도 기쁘고 어린아이자체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왜? 카코파머의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책을 최근 다시 읽었다. 파머는 그의 책에서 손녀딸을 만났을 때 자기가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실제 확인한 것이 있었다. 아이는 이미 어떤 원석의 형태로 천자의 형상이 있었다,라는 표현을 썼다. 어린아이에게는 끄는 매혹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다움. 가우디 성당에 가면서 비슷한 정서를 느꼈다. 유아들은 장난기가 있다. 우리들은 커가면서 억압되고 오염되고 점점 죽는다. 특히 종교인의 경우(우리 직종은) 겉사람이 발달하게 되어 있다. 이미지를 구축하는 순간 가장 속사람이 강건해야 하는데 이율배반적이다. 억압당하지 않고.

아이비(성당 출입구)를 보면서 풍뎅이를 넣고 거미를 넣고, 이런 상상을 했을까? 이렇게 접근한 가우디의 건축적인 관점이 여기 저기 있을 것이다. 깨진 사금피리를 가지고 놀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앞으로도 가우디를 더욱 알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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