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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내 꼴을 보는 게 신앙이다”등단 60주년 소설가 정연희의 신앙고백
올해 등단 60주년인 82세의 소설가 정연희 권사는 "고통이 내 인생의 버팀목"이었다면서 "고난을 통해 영혼의 씨눈이 벗겨지는 사건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성경 안의 이야기만 해도 소설 100권을 쓸 수 있다"면서 "기독교 신앙으로 역사의 행간을 읽고 쓰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60년 세월은 환갑잔치가 성행했던 시절 한 사람의 '일생'이다.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는 소설가 정연희 권사(그루터기교회)가 여러 매체에서 주목 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1957년 이화여대 3학년 때 단편소설 '파류상'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장편 30여권, 단편 9권, 그외 다수의 에세이집을 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와 같은 책은 100쇄를 넘겼다. 82세인 올해도 벌써 작품집 ‘바람의 날개’와 환경생태 수필집 ‘천사의 바구니’를 출간했고 기존 장편도 재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소설가협회상, 한국문학작가상, 윤동주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한국소설가협회장과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회원이기도 하다.

그와 비슷하게 등단해서 같이 활동했던 박경리 작가를 비롯해서 박완서 작가 역시 세상을 떠났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덧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료 여성작가들이 많이 사라졌다. 팔순을 넘긴 지금도 수백, 수천 매 원고지를 채우고 있는 그의 활동이 눈부실 정도다.

고 박경리 작가의 토지 출간 25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승옥 등 동료 작가들과 함께(가운데)

화려함 속에 감춰진 열등감

“사실 피난 가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신문사에 글을 발표했으니 어떻게 보면 등단한 지 70년이 넘었죠. 그래도 그 오랜 세월 동안 사실상 문단에서 백안시당했어요. 서울대 평론가들이 나를 외면한 면이 좀 있었어요. 이대 졸업생으로 연애꾼으로 헛소문이 나고, 영화배우 신성일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벼라 별 걸 다 만들어내서 무슨 사건만 나면 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제가 나오니까 그런 오해도 있었죠.”

그러나 등단 6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현역으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그를 문단과 언론 등 여러 유력 매체에서 재조명하면서 그의 표현대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는” 위로를 받고 있다. 기자가 인터뷰하는 날도 그는 “오늘도 잔칫상을 받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고 했다.

“고통이 내 인생의 버팀목이었다”는 그의 80년 인생 회고사가 언뜻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대생으로 문단에 데뷔해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류소설가’로 시선을 모으면서 1969년 경향신문 세계일주기행작가로 여권이 두툼해질 만큼 세계를 누비며 방송 텔레비전 잡지 등을 도배할 정도로 유명했던 그였다. 화려해 보였지만, 그 마음속엔 깊은 상처가 있었고 그것이 평생을 지배했다.

“엄마가 나를 낳기 석 달 전에 햇덩어리 같은 아들을 잃었어요. 아주 잘생기고 영특해서 누가 안으면 안 돌려줄 만큼 잘생겼었데요. 그런데 그 아들을 잃고 제가 태어났으니, 저는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고 태어난 딸이 된 거예요. 그렇게 타박네 신세로 자랐어요. 오죽했으면 엄마에게 편애 당하는 불만을 일기로 쓴 게 글쓰기의 시작이었으니까요.”

불행하게 끝난 첫 결혼 역시 집에서 탈출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사람에 대한 방어기제가 강했던 그는 ‘만만해 보이는’ 남자와 인연을 맺었고 당연히 그 만남이 행복해질 수 없었다. 많은 학대와 모멸 속에서 결국 파경을 맞았다. 그때 벼락처럼 만난 한 남자로 인해 간통죄로 피소되면서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왼쪽은 1964년 조선일보에 '불타는 신전' 연재 무렵, 오른쪽은 1970년 중앙일보에 '일요일의 손님' 연재 당시

영혼의 씨눈이 벗겨진 사건

“1973년 9월에 간통죄로 피소됐죠.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40일 동안 매일 끌려가 조사를 받고 또 72일 동안 서대문구치소에 구속당해 재판을 받았어요. 그때가 마침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정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라, 제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말도 있었죠. 기고만장했던 정연희 간통사건으로 주의를 돌릴 수 있었으니까요. 불구속 수사 40일, 구속 재판 72일 만에 집행유예로 풀어놓는 간통사건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이건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 사건으로 정연희의 영혼에서 씨눈이 벗겨진다. 모든 생명은 씨가 있다. 씨앗은 캄캄한데 묻혀 있다가 씨눈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명인 빛을 만난다. 그 고난의 통해 그의 영혼의 씨눈이 떨어졌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렸고, 그의 인생이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나뉘게 됐다.

“이대 다니면서 4년 동안 성경을 이해하지 못했고, 노래를 곧잘 부르는데도 찬송가는 못 부르겠더라고요.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도리질을 했던 제가 통곡하며 쓰러진 거죠.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도움을 요청했고, 그분이 들어주셨어요. 간통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분(고 김응삼 장로)과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 사건으로 하나님은 제게 낙인을 찍어주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요. ‘주홍글씨’의 낙인처럼 말입니다.”

놀랍게도 그 후로 글들이 쏟아지듯이 나왔다. 대학 3학년 때 신춘문예에는 덜컥 합격했지만 토스트에프스키의 ‘죄와 벌’이 왜 고전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글 몇 줄 쓰려고 해도 쥐어짜야 겨우 나왔다. 그러나 씨눈이 떨어진 이후로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고, 모든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잘 알려진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비롯, ‘양화진’ ‘순교자 주기철’ 등으로 기독교적 진리를 문학으로 풀어냈다.

당시 어떤 평론가는 기독교에 귀의한 그를 향해 “광신자가 됐으니 작품은 이제 다 썼네”라고 단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왕성한 작품을 써냈다. ‘기독교 문학’이라는 용어 자체를 그는 싫어한다. 신앙을 통해 삶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게 됐다. 그 깨달음이 작가의 삶 속에 녹여져 나온 작품일 뿐이다.

현재 안성에 있는 집은 작고한 남편(고 김응삼 장로)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따서 '삼희동산'이라고 부르는데 매일 연장통을 들고 돌보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사진은 봄꽃이 한참일 때. (사진=오정석작가 제공)

내 신앙은 '스스로' 지키는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실 별별 일을 다 겪었어요. 유명한 목사님들과 함께 성경공부도 하고 교회생활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비리와 문제들을 보게 된 겁니다. 그야 말로 소설감이죠. 제가 소설로 쓰면 ‘무희 타이스’보다 더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한국교회 이야기니까 안 쓰는 것뿐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첫 신앙의 순수함이 오래 되면 때가 묻어요. 신앙이 거덜이 납니다. 결국 개인의 문제에요. 제도권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해요. 개개인이 목숨을 어떻게 지키느냐처럼 자기 신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문단의 분위기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경기도 안성 집은 작고한 남편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와 ‘삼희동산’이라 부를 만큼 3000평 대지에 풀과 나무가 무성한 곳이다. 매일 아침 기도실에서 기도 후에 연장통을 들고 정원을 다듬고 있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인 듯 점점 ‘아마존’이 되어 간다고 한다.

“안성에 있다가도 후배 소설가들이 밥 사달라고 하면 서울로 올라오죠. 이 사람들은 내가 돈이 없다는 걸 상상도 못해요. 문단에 다독여주고 끌어안는 어른이 없어요. 누군가 수천만 원 상금 받는 문학상을 타서 문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식사를 했는데 딱 회비 10만 원만 내고 가더랍니다. 전 여자라도 그렇게 안합니다.”

문단의 ‘대모’로 남은 80대 소설가 정연희 권사. 오랜 세월, 아니 지금도 고통이 버팀목이라는 그는 그래도 요즘 행복하다. 주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차려주시는 잔칫상을 매일 즐기고 있다. 후배들과 번개팅을 하러 간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신앙이란 뭔가’라고 물었다.

“좋지 않은 사건이 생겼을 때, 후배들에게 그럽니다. 뭐가 기적이냐? 내 죄가 보이는 게 기적이다. 내 죄가 보이면 딴 짓을 못해요. 매 순간 내 꼴이 보여요. 잘못한 게 지금도 너무 많지. 이거 하지 말아야 겠다 하면서도 또 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의 탄식이 이해가 돼요. 그러나 사도바울처럼 내 꼴을 보는 게 신앙입니다. 그러면, 그래도 희망이 있어요.”

이성원 기자  jos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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