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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으로 기억하기박인환 목사 / 화정교회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의 이름은 야드 바셈(Yad Vashem)이다. 히브리어 ‘야드’는 기억을 뜻하고 ‘바셈’은 이름을 뜻한다. 우리는 학살당한 그 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그러나 600만 각 사람마다 소중한 삶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이름은 ‘안네의 일기’를 남기고 죽은 ‘안네’라는 소녀의 이름 정도다. ‘야드 바셈’은 ‘집단으로서의 희생자 600만 명을 기억하자’가 아니라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름은 한 개인의 전부를 나타낸다. 한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얼굴이 있고 그 사람의 삶이 녹아있다.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면 그의 삶이 내게로 다가온다. 그런데 사람들을 집단화시키면 개개인의 이름은 사라져버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600만’으로가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자고 한다. ‘야드 바셈’ 출구 쪽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로 이끌고 기억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

십 수 년 전부터 ‘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가 급속하게 나락으로 치닫는 것 같은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놀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대형교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그리 눈치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각성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형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인을 집단화하거나 대상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난 3년 반 동안의 직간접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하나님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폭언을 하여 유가족들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세월호 희생자가 10명이 넘는 안산의 어느 대형교회는 그 목사를 모셔다 집회를 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생자가 있는 37개 교회 가운데 가장 희생자가 많은 그 교회 목사가 목사들 중에서는 가장 크게 슬퍼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아마 ‘수천 명 교인 중 열두어 명’으로 생각하여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의 이름으로 기억한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병든 자, 버림받은 자를 보시며 눈물 흘리셨던 예수님의 공감을 오늘 한국교회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성장신학이라는 사이비신학이 유행하면서 교회는 오직 성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해오면서 말 그대로 양적인 성장은 하였다. 그러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고, 성도들을 단지 교회를 채우는 집단(숫자)으로 대하여 오지 않았는가. 한국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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