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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복음을 들고 전진김정석 목사 / 광림교회

요즘은 미자립교회는 비전교회로 불린다. 새해 목회계획과 예산계획 수립으로 바쁠 시기에 비전교회 목회자들은 분명 지하수펌프를 고치고 있거나 보일러 수리로 분주하다. 비전교회 시절을 거쳐 온 목회자들은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교회차량에 넣을 주유비가 없어 5천 원만 넣어달라고 민망해하며 말한 경험이나, 폭설로 행여 교회지붕이 주저앉을까봐 밤잠 못 이루고 제설작업에 눈물 쏟던 시간들은 우리 목회자들의 처음 목회의 다짐을 새삼스럽게 호출해낸다.

내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우리 교회 차량은 베스타였다. 교인들이 승하차하는 문이 매번 말썽을 부렸다. 때마침 수리비도 없었다. 비용이 마련되기까지 대략 석 달간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문은 안에서 열리지 않았고 밖에서 열어줘야만 열렸다. 교인들이 승차할 때에도 하차할 때에도 운전하는 내가 일일이 밖에서 문을 여는 수고를 감당해야만 했다.

뜻밖의 은혜가 그 불편을 통해 찾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베스타를 이용했던 교인들 중 기도멤버였던 할머니 권사님 다섯 분은 차량 문이 고장 난 걸 몰랐고 이제 갓 안수 받은 목사님께서 문도 다 열어주시고 너무도 겸손하신 분이라고 서로들 칭찬하고 기도해 오신 것이었다. 차량 문이 수리된 이후에도 문 열어주는 수고는 내 몫이 되었다. 그걸 예쁘게 보신 걸까. 한 번은 같은 지방 선배 목사님과 함께 베스타에 동승한 적이 있다. 평상시 오가던 길이었기에 겨울철 빙판 위라는 걸 인식 못했다. 커브 길에서 순식간에 논두렁에 빠지고 말았다. 몸에 묻은 먼지만 툭툭 털고 나와 보니 베스타는 폐차 직전의 모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몇 번이고 교회 차량을 이용하셔서 목회의 길을 가르치고 계셨다.

내게 베스타가 있었다면 존 웨슬리에게는 말이 있었다. 존 웨슬리 일가(一家)는 가문의 문장(紋章)으로 조개 모양을 사용했다. 평생 기사도의 정신을 문장을 통해 새기고 목회에 적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감리교 목회자들에게 더 친숙한 존 웨슬리의 상징은 조개가 아니라 그가 탔었던 말이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언제 말에서 내려오실까, 예나 지금이나 감리교 목회자들에게는 진중한 농담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년 평균 8000마일(1만 2800㎞), 40년 간 52만㎞나 전도를 다녔다. 지구를 13회 이상 순회한 셈이다. 각종 동상이나 로고에 새겨진 존 웨슬리의 모습은 언제나 전도여행을 떠날 채비를 갖추고 말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말 위에서 성경을 읽다 낙마한 적도 있는 한 책의 사람으로 우리 가슴에도 새겨져 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고 나면 곧장 송구영신 예배가 이어진다. 이맘때면 늘 하나님께서 계신 곳과 인간의 땅 사이의 거리를 마음속으로 재어보게 된다. 물리학 거리 만으로라도 가늠해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구석진 깊은 곳까지 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알고 싶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가 말에서 여전히 내려오지 않고 말 안장 위에서 성경책을 집어 들고 읽은 것은 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그나마 좁히고자 노력한 목회자의 사명으로 충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의 모든 감리교회가 2018년 표어를 정했을 시점이다. 광림교회도 새해 표어를 확정했다. “복음의 비밀을 알아 열방을 치유하는 교회”(엡 6:19). 존 웨슬리에 앞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사명을 다했다. 그런 사람에 대해 세상에 외치기를 ‘한 새 사람’이라고 했다. 한 새 사람은 누구인가. 보는 것과 아는 것과 되는 것이 일치된 사람이다.

연말연시라 모두가 바쁘다. 그러나 분주할수록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부르심 받은 시대에서 ‘한 새 사람’이 되기 위해 목회초년병 시절도 떠올리고 틈틈이 고전을 읽어가면서 마음을 내리고 내면의 여백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내 경우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도움을 빌어 그 여백을 넓히고 있다. 에크하르트 영성은 두 개의 커다란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다. 그는 하나님을 도구화, 수단화, 소유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간의 자세를 낮춤, 비움, 겸손이라고 강조한다. 에크하르트의 영성을 일상으로 옮겨 놓아보자고 스스로에게 권면한다. 그렇게 새해에도 복음을 들고 사도 바울처럼, 존 웨슬리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하여 전진할 따름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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