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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집] “말로 위로하기보다 이주노동자의 아픔에 함께해요”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낮은자리교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덕봉 씨와 김경미 간사의 모습. 유덕봉 씨는 “희망이 없을 때 도움을 주셨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경미 간사는 “중국에 있는 두 딸에게 아직 다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며 “유덕봉 씨의 회복을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 산동성 출신의 유덕봉(33) 씨는 지난해 10월 부푼 기대감을 안고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 작은 행복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유덕봉 씨는 친구의 소개로 일하게 된 공장에서 작업 첫날 손가락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제때에 봉합 수술을 받지 못해 한순간에 손가락 없이 생활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원치 않은 부상까지 입어 발만 동동 구르던 절망의 순간, 손을 내밀어 준 곳이 낮은자리교회였다.

임금체불 문제로 상담을 받았던 적홍량(36) 씨에게도 낮은자리교회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마지막 창구였다. 요리사 자격으로 2014년부터 한국에서 생활한 그는 매일 12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일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지만, 그마저도 월급을 주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적홍량 씨는 낮은자리교회의 지원을 받아 민사소송까지 한 끝에,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낮은자리교회와 김해이주민인권센터를 섬기고 있는 김형진 목사

낮은자리교회(김형진 목사)는 그 이름처럼 이 땅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한 이주노동자들의 그늘이자 보금자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유덕봉 씨처럼 부지불식간 산업재해를 입은 이들부터 사업주에게 임금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의 짐을 함께 나누고 있다.

낮은자리교회가 위치한 경남 김해시 동상동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식당과 식료품점, 이슬람성원, 불교사원 등이 밀집한 지역으로 ‘경남의 이태원’, ‘외국인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부산, 창원, 양산, 울산에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주말이면 이곳에서 장을 보거나 음식을 사먹는다. 김해에 거주하고 있는 공식적인 이주노동자만 해도 1만 7천 명가량으로 비공식 인원까지 포함하면 3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김형진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4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 사역에 뛰어들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외면하는 것은 신앙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수치라는 생각에서다. 또 내국인과 이주민간의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비전도 있었다.

김 목사는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를 거쳐 2008년 김해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사역지를 정하기까지 고민하던 부분은 세 가지였다.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일 것과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정망이 형성되지 못한 곳, 상담 및 지원센터가 없는 지역에서 사역하기를 희망했다. 당시 평택, 원주, 김해 지역을 놓고 고민하던 김 목사는 파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로부터 김해로 내려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길로 김해에 내려간 김 목사는 가장 먼저 ‘김해이주민인권센터’ 사역을 시작했다. 센터 문을 연 첫 주에 진행한 상담만 90건에 달했을 정도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사업장 환경 개선을 위한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통역을 맡고 있는 김경미 간사는 김해 지역의 한 성결교회에서 중국어 예배를 인도하는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인권센터에 합류했다. 매주 교회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기도하겠다’는 말밖에 전할 수 없는 현실에 고민이 쌓여갔다. 김 목사와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인정과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 인연이 돼 2013년부터 인권센터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김 간사는 “이 사역을 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몸소 느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추상적으로 ‘기도해주겠다’는 말로 끝나지 않게 됐다”며 “이주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눈여겨 볼 수 있게 됐다. 도움을 주러 왔다가 내가 더 위로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가 감당하고 있는 사역은 상담에서부터 정책 연구와 제도개선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정부의 단속을 피하다가 다친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과의 소송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도움을 호소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김 목사는 당장 거주할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숙소로 내눴다. 물건이 없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잠잘 곳도 없이 고생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밟혔다. 김 목사의 집에서 생활했던 이주노동자 중에는 한국인과 결혼해 정착한 경우도 있다. 자신의 전세금을 빼서 집을 마련해주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의 외국인거리가 활성화되기 전에 ‘다국적상가협의회’ 설립에도 산파 역할을 했다. 내국인과 이주민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주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이 필수라는 생각에서였다. 현재는 인권센터 사역에 집중하기 위해 손을 뗀 상태지만 이 거리에서 김 목사의 도움을 받은 이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김형진 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선물. ‘아무 사심 없이 희생적인 헌신으로 도와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벗으로 헌신적인 사역을 감당해왔던 낮은자리교회와 김해이주민인권센터는 최근 이전에 없던 큰 위기를 맞았다. 교회 근처에 있는 한 이슬람성원이 교회가 자리해 있는 건물을 매입하고, 일방적으로 이전을 통보했다. 과거 김 목사가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곳이지만, 돌아온 것은 차디찬 이전 통보였다. 김 목사는 “솔직한 심정으로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원망하지는 않는다”며 “이주노동자를 위한 제도개선이 사역의 끝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데는 무척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는 목회적 돌봄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선교의 대상은 해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처럼 우리 주변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며 “한 인생을 살리는데 무척 많은 수고와 기도가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이주민과 동고동락하는 일에 나서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땅에 우리 죄를 사해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당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한 과부와 세리, 사마리인에게 다가가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아닐까. 약자를 찾아가 위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이주노동자들의 아픔과 괴로움을 돌아보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김준수 기자  kjs0827@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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