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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2017 우리 시대 고난받는 이웃을 찾다기독교타임즈·고난함께·서울연회 공동기획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 가족·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에게 전해진 그리스도의 사랑
광화문에서 공동투쟁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농성장을 고난함께 사무총장 진광수 목사와 함께 방문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서울연회와 기독교타임즈의 후원으로 방한용품이 전달됐다.

지난해 겨울, 광화문광장은 전국에서 모인 수백만 촛불의 열기로 뜨거웠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평범한 이들의 바람은 1년이 지난 지금, 정권 교체로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광화문에는 여전히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주인공들이 남아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중심이자 그렇기에 가장 대중의 관심에서 소외된 곳, 광화문. 본지는 연말을 맞아 감리회 본부 앞, 이 시대 고난 받는 이웃들을 찾아가 그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기획에는 늘 소외된 곳을 향해 위로를 전하는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사무총장 진광수 목사), 그리고 광화문을 품고 있는 서울연회(강승진 감독)가 함께했다.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왼쪽)가 선물 받은 캘리그라피 말씀 액자(한라경 作)를 들고 진광수 목사와 함께한 모습. 진 목사의 손에 들린 책은 예은이의 가족과 친척, 친구, 교회 식구들이 예은이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펴낸 것이다.

“아픔 그 자체로 바라봐주세요”

이제는 모두의 아픔이 돼버린 2014년 4월 16일. 박은희 전도사(화정교회)에게 이날은 평생 마음속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다. 전도사로서 고난주간을 지내며, 부활절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중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딸 ‘예은이’의 마지막 인사였다는 사실을.

“그 일이 있기 바로 전 주에 안산작은도서관협의회장을 맡게 됐어요. 도서관학교를 기획하며 강사를 섭외하고 있는데 마침 9시 반쯤 연락이 닿지 않던 한 분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한참 통화하던 중에 예은이에게 전화가 오는 걸 확인했어요. 그러나 워낙 기다렸던 분과 이야기하고 있던 참이라 ‘엄마가 금방 전화할게’라는 문자만 남겼죠.”

박 전도사는 통화를 마친 뒤 예은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무슨 일인지 갑자기 사방에서 쏟아지는 전화에 결국 연결되지 못했다.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으로 남아있다.

TV에서는 계속해서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그가 진도군청과 해군, 해경에 직접 확인한 바로는 서로 회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불안함 속에서 아이를 기다리던 중 현장에 내려간 남편(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에게서 걸려온 전화 속 첫 마디를 박 전도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전화를 받았는데 남편이 ‘여기 애들이 없어’라고 하는 거예요. 큰 체육관 공간에 비해 애들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죠. 그럼 애들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다 배안에 있다’고 말했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고통 속에 씻지도 못한 채 뜬눈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그는 일주일 만에 목 놓아 기다리던 딸을 찾았지만, 박 전도사의 마음속 어려움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늘 입에서 떠나지 않던 찬양도 부르기 싫었고, 성경도 읽고 싶지 않았다. 사랑과 평안,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내용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누가복음을 읽는데 성경 속 예수님의 삶이 나와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흔적이 이해가 되고 그분이 만났던 낮은 자리에 있는 자가 마치 우리인 것 같고, 예수님께서 당한 일이 우리가 당한 일 같았죠. 그것을 깨닫게 된 순간 단단히 위로가 됐어요.”

그러나 아직도 세월호 가족 중에는 “하나님은 버리지 않았지만 교회는 버렸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다.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슬프고 어둡고 힘든 부분들을 죄악시하는 것 같아요. 이제 딸이 천국에 갔으니 위로 받으라는 사람에서부터 심한 경우 울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마치 우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듯했죠. 교회는 밝고 즐거운 공간인데, 미수습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분위기를 깨는 것처럼 여겨져 금기시돼 버리는 부분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교회가 많은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박 전도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금전적인 지원 외에도 찾아가서 ‘무엇이 힘든지’, ‘왜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인지’, ‘이를 통해 본 것은 무엇인지’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 주기를 소망했다.

“처음 참사가 발생했을 때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함께 울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하나님께 같이 물어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오는 사람들마다 교회에 다니는지만 물어봤어요. 어려움을 겪는 일에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죠. 예수님은 그냥 찾아오셔서 ‘너희 모두 많이 아프구나’라고 하셨을 것 같은데, 아픔 앞에서도 소속을 따지는 상황이 부끄러웠어요. 불교, 천주교, 심지어는 신천지 교인일지라도 그저 고난 현장의 아픔에 있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 바라봐줄 수는 없는 걸까요?”

박 전도사는 끝으로 출범을 앞둔 제2기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라며, 세월호 가족들이 함께 추진 중인 ‘세월호 4·16 안전공원’ 조성을 위해서도 한국교회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기독교는 ‘십자가’라는 가장 끔찍한 상징물을 갖고 있는 종교잖아요.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를 기억의 매개체로 수천 년의 신앙을 이어온 것처럼, 세월호 4·16 안전공원이 기억의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저도 맘껏 울고 깊게 몸부림치면서 예은이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광화문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컨테이너박스에서 진광수 목사(왼쪽)가 2등 항해사 허재용 씨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누구나 내 일이 될 수 있어요”

광화문광장 남측은 지난 2014년 이후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농성장과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 등이 마련되며 ‘세월호광장’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곳에 올여름부터 노란 리본 물결 사이로 주황색 리본이 등장했다. 바로 올해 3월 31일 우리나라와 정반대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이 주황색 리본을 달고 수색 재개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선 것이다. 주황색은 실종선원들이 탑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명벌의 색깔이다. 혹한의 추위가 몰아닥친 지난 7일, 세월호 광장 한 켠에 마련된 스텔라데이지호 컨테이너박스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허영주·경주 자매는 2등 항해사 허재용 씨의 누나들이다. 동생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두 사람은 생업을 뒤로 한 채 매일 선사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며 사고 해결에 앞장섰다.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하는 한편,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만나며 심해수색 장비 예산 도입을 설득했다. 마침내 여야 의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 실종 선원 추가 수색 및 사건 규명을 위한 수색 예산으로 50억 원이 책정됐지만 기쁨도 잠시, 2018년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장비 구입 예산은 제외됐다. 선례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고 후 9개월이 다 돼가지만 전혀 사건 해결은 진전되지 않고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에요. 선사는 보험금 합의에만 열을 올리고 있고, 정부는 담당 부처 간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더군요. 이번 예산안 처리에서 부결된 것도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 7월 20일 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5개월이 넘도록 세월호광장에서 수색 재개를 요청하는 10만인 서명운동을 펼쳐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지킨 결과 결국 온라인 합산 10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조만간 청와대와 UN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저희 아버지를 비롯한 60~70대 어르신들이 한여름 뙤약볕과 한겨울 강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견뎌 가며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사건 초반 저희끼리 계란으로 바위 치듯 부딪쳤을 때만 해도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아는 사람은 100명 중 한 명에 불과했어요. 요즘은 그래도 10명 중 한 명은 알아주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두 사람은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단순히 남의 일로만 여기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 특히 먼 바다에서 화물선원들에게 일어난 일인 만큼, 세월호 참사 때만큼의 관심은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이 단순 사고가 아닌 재난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기를 호소했다.

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허씨 자매가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각종 의혹을 끄집어내는 성과도 상당수 이뤄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싸워주는 가족들과 함께해주는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한편, ‘왜 이 일을 아픔을 겪는 피해 당사자가 직접 해결해야 하는지’,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해서 야기하는 국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확한 사고 원인이 규명되고 미군 초계기가 발견한 구명벌의 진실이 밝혀지도록, 제대로 된 수색이 이뤄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교회의 관심을 당부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막내가 생각나요. 동생은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돌아올 때면 꼭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똑같이 만들어주고는 했거든요. 우리들이 끝까지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제 동생을 포함해 여전히 구명정 위에 있을 선원들을 위해, 저희 같은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해양사고 대응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컨테이너박스 앞에서 2등 항해사 허재용 씨의 어머니 이영문 씨(오른쪽)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허씨의 누나 영주(왼쪽), 경주 씨가 함께했다.

“모두의 이야기, 관심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만난 이 시대 소외 이웃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나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올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리던 날,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서울청사 사이 전국 7개 사업장의 노동조합이 함께 모여 있는,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농성장을 찾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천막은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렸고,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와 입김이 났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던 이들이 힘을 합친 이유는 거리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상황 때문이다. 원인은 다르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는 평생을 헌신해온 직장으로부터 헌신짝처럼 한순간에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조를 만들어 맞섰지만 힘의 논리에 의해 벽에 부딪친 그들은 연대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 싸우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 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전국금속노조 콜트콜택 이인근 지회장은 벌써 11년이라는 긴 세월을 길거리 위에서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 봄 광화문 광고탑 위에 올라 ‘정리해고 반대’ 등을 요구하며 22일간 고공 단식농성을 벌인 주인공이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시간 변한 것은 거의 없었고, 가정에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 정리해고 된 40~50대 가장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가 하면, 사춘기 아이들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입었죠. 대부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물질적인 유혹도 있었지만, 우리가 처한 부당함을 알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큰 희망을 바라보며 지금껏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선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지회장은 무엇보다 노동자로서 정당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저희들을 향해 ‘시위꾼’이라고 부릅니다. 세상 어디에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라가 또 자본이 저희를 싸우게 만들었고 거리로 나앉게 했습니다. 심지어는 종교의 이름을 갖고 저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제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과거 1960~80년대 독재 정권 하에서 노동자들에게 공간을 열고, 활동을 지지했던 교회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노동과 노조에 대해서 적대시하는 오늘날 교회 내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자신들의 문제가 단지 별난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닌 한국사회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이자 한국교회 성도 절반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한국교회가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기를 부탁했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 교회 안에서도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통 받는 현실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기도회로 모여 함께 목소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각 지역에서도 연대하고 전파해주는 교회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교회가 고난과 핍박의 현장과 접촉을 확대해나간다면 우리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아마도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교회 안에 가장 많이 회자된 성경 구절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했을지는 몰라도 우는 자들의 울음이 돼 주지는 못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공투위 농성장 천막 안에서 진광수 목사(가운데)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원희 기자  whjung@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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