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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를 활용하는 카페교회최혁기 목사 (새로운교회)

예전에 황부잣집 며느리의 지혜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며느리를 선발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데 여종과 머슴 2명과 함께 적은 양의 쌀을 가지고 한 달을 버텨야 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다른 며느리들은 부족한 쌀을 아끼며 버티거나 보리로 바꾸어서 버티는 정도였는데 한 며느리는 그 쌀을 떡으로 만들고 그 떡을 주변에 돌리며 여종에게 아가씨의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다고 소문을 내서 일감을 가져오게 하고 머슴들에게 나무를 해와서 장에 팔게 하고 수고비를 주게 되니 한 달 뒤에 쌀도 넘치고 나무도 많고 머슴과 여종도 모두 즐겁게 살고 있어서 며느리 시험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부르심과 사명을 가지고 개척목회를 시작하지만 그 힘든 현실 속에서 참고 인내하고 아끼면서 버티는 데만 길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교회 공동체 멤버들과 함께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부르신 사명대로 교회를 세우고 지켜내며 지속가능하게 만들어가는 열심일 수 있다.

주님께서 부르신 대로 예전의 전통적인 스타일대로 기도하고 예배하며 교회를 지키는 게 맞지만 이제 앞으로의 한국사회에서 개척교회가 살아남기란 더 어려운 이야기가 돼버렸다. 그렇기에 더더욱 목회자들의 생각이 유연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지속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 지속 가능하도록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초기 선교사들은 후원을 받아 선교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후원이 줄어들면서 지금의 선교지는 그동안 길러내고 양육했던 현지인들을 위해서라도 선교사가 철수하지 않고 지속적인 선교사역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비즈니스 선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선교가 비즈니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도구로 삼아 선교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선교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느새 한국에 수많은 개척교회의 상황이 선교지의 상황과 비슷해졌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순간 개척교회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렇게 된다면 한국교회는 아마 영적 기근의 시대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중형교회나 대형교회에 교인들이 대부분 개척교회에서 주님을 만나고 신앙생활했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작은 샘들이 마르면 큰 강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회자들이 먼저 미래를 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도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관점이 부정적이라면 생각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비즈니스는 이미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이미 교회 안으로 많이 들어 와있다. 농어촌교회에서 생산한 농수산식품들이 도시교회로 유통되어 소비되는 구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던 일이다. 그러니 새삼 이제 와서 비즈니스를 왜 교회가 하느냐고 지적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회에 맞는 비즈니스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봐야한다. 작은교회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건 그만큼 찾아보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비즈니스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을 찾아보고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배워야 한다. 교인들에게 헌금만 강요하고 기대하기 보다는 교인들과 함께 연합하여 비즈니스를 하고 그 수익으로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공부를 안 해도 기도만 하면 좋은 성적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면서도 아무것도 안하고 기도만 하면서 교회가 부흥할거라고 기대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아채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우리 교회 공동체는 카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성도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로인해 더 다양한 성도들이 모이고 함께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증거하며 지속가능한 형태의 비즈니스 카페교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면 얼마든지 어려운 일을 감당하며 지속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가야한다. 누군가의 도움과 후원만 바라며 걱정과 염려로 아껴가며 간신히 교회를 지키기 보단 직접 두 손 걷어 부치고 바느질을 하고 장작을 팔아서라도 텐트메이커로서 살아간다면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크게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은혜와 축복이 흘러가는 교회가 될 것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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