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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콤플렉스김호진 목사 / 올랜도연합감리교회

세 가지 콤플렉스! 오늘은 은퇴자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을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나이 콤플렉스.’ ’얘야,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단다.’ 부모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늦게 나이 들어 학교 가서 공부할 수 있지만 젊을수록 좋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어디 공부의 본질이 지식에만 있는가? 더 깊은 본질은 ‘배움’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는 젊을 때가 좋지만 배움에는 때가 없다. 팔십 노인이 세 살 아이에게도 배울 수 있다. 졸업 후 학교 교문을 나가면서 인생의 배움이 시작된다. 시장 바닥에 펄떡펄떡 꿈틀대는 배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공부에는 때가 있으나 배움에는 때가 없다. 죽을 때까지 배우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다.

주님의 일도 마찬가지다. ‘일’에는 다 때가 있다. 당연히 젊고 힘 있을 때 일을 더 빨리 잘한다. 무거운 연탄을 옮겨도, 휠체어를 밀어도, 아이들이 올라타도 괜찮다. 그러나 ‘주님’의 일 에는 때가 없다. 사무엘처럼 어릴 때부터 할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처럼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 세례요한처럼 청년의 때에 할 수도 있지만 시므온 할아버지처럼 할 수도 있다. 처녀 마리아도 할 수도 있지만 안나 할머니도 할 수 있다. 일에는 때가 있으나 주님의 일에는 때가 없다. 죽을 때까지 주님의 일 하다가 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둘째, 크기 콤플렉스. 주님의 일을 하는데 우리가 벗어나야 할 편견이다. 크기에 집중하기에 돈이 더 있어야 한다. 사람이 더 많아야 하고 기왕이면 젊고 힘 있는 사람이 더 좋다. 당연히 작은 일은 시시하게 생각한다. 힘없고 돈 없고 나이 든 사람이 배제된다. 이것은 새마을 운동이지 주님의 일이 아니다.

‘큰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큰 사랑으로 일하십시오.’ 인도의 빈민가에서 평생을 헌신한 마더 테레사의 자전적이고 실재적인 권면이 우리 마음에 울림을 준다. 그녀는 처음부터 큰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매순간 큰 사랑으로 곧 예수 사랑으로 그 순간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는 물질과 나이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고 하나님은 거기서 그 한 사람을 통해 큰일을 이루셨다.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신다. 우리를 그분의 일에 초청하시며 우리가 이것에 반응하여 삶을 조정하고 순종할 때 주께서 필요한 능력을 주신다.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신다. 도울 사람들을 부쳐주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크기의 일을 이루신다.

셋째, 성공 콤플렉스. 밥 버포드는 ‘해프타임’이란 책에서 인생을 축구경기에 비유해 두 분야로 나눴다. 전반전은 성공(Success)을 지향하는 삶이다. 치열한 입시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한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해서 미친 듯 앞만 보고 뛰어가는 시기다. 이 시기의 인생은 속도가 최고이고 최선이다. 이에 반해 후반전은 의미(Significance) 있는 삶을 지향하는 삶이다. 해치우는 인생이 아니라 속도를 늦추고 내면의 목소리와 삶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는 시기이다. 인생에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는 실버의 시기이다. 이를 위해 해프타임 작전시간이 있다. 전반전의 인생을 돌아보고 인생의 전략을 성공에서 의미로 조정해야 한다. 우리의 위대한 감독이신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가? 아무리 큰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이유를 알면 성공한 것이고 아무리 큰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의 의미를 모르면 실패한 인생이다. 이민목회를 통해 많은 이민자의 삶을 보면서 여지없이 이 공식이 들어맞는 것을 경험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민까지 와서 앞만 보고 살아간다. 아니 살아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성공해서 차를 바꾸고, 집을 바꾼다. 집안 가구와 가전제품을 바꾼다. 그런데도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하고 재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같이 살던 사람까지 바꿔본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유효기간은 오래가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성공은 했는데 그것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으로 실패한 인생이다.

은퇴의 시기를 실버세대라고 한다. 금빛이 아니다. 왜 금이 아닌 은일까? 금이 상징하는 돈과 성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은이 가진 고상함과 순결함. 인생의 참된 의미를 쫓아가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이렇게 좋은 시기에 부질없는 콤플렉스는 이제 안녕으로 이별하자. 나이, 크기, 성공의 굴레여 이제 잘가라! 이제 나는 주님의 일에 큰 사랑 가지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살겠노라, 그 찬란한 은빛의 날들을 위하여!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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