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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최형근 목사 / 한마음교회

사람의 본성은 과연 어떨까. 선할까, 아니면 악할까.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는 쉽지 않은 문제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선한 인간이 타락해서 원죄가 있음을 말한다.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어거스틴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명제를 선언한다. 물론 이 명제는 루터에 이르러서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란 명제로 웨슬리는 ‘이것을 다시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posse non peccare)’로 가르친다. 이 웨슬리의 선언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개념의 시작이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감리회의 모습을 보면 웨슬리의 가르침은 온데간데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일들이 다반사다. 웨슬리의 가르침은 고사하고 아예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마치 죄인들이 죄를 짓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불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는 형국이다. 이제 부끄러움도 수치도 모르는 것이다. 감리회의 재산을 이단에게 팔아 놓고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현실적인 돈의 문제로 들어가면 신앙도 신조도 없다. 오직 남는 것은 돈뿐이다. 죄인이 죄짓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인간이 부끄러움조차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인간이 가져야 할 본성에는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가 있다. 그 각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근원을 이룬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소위 말하는 ‘싸가지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 볼 때에 감리회는 정말 ‘싸가지 없는’ 교회로 보일 것이다.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그러나 그게 우리의 맨얼굴이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자.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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