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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마침내 진보할 것이다진광수 목사 / 고난함께 사무총장

작년 말 개봉한 영화 ‘1987’이 해를 넘겨서도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천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관객 구성도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작년이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이자 촛불 시민저항을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더욱 그 시절 역사가 재조명받는 느낌이다. 주변에도 영화 관람 내내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1987년이 모두에게 아직 살아있는 역사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987년 2월, 대학원을 졸업하며 철들고 처음으로 학생 신분을 벗어나 세상과 대면했다. 덕분에 조금 자유롭게 밤낮가리지 않고 시국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가 밝혀지고 민심이 마치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날마다 최루탄 냄새를 풍기며 집안에 들어섰고, 군인 장교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못마땅해 하셨다. 오죽하면 아버지와 9시 뉴스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영락없이 아버지와 논쟁이 벌어졌고 언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아버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부모 자식 간 대화가 녹록치 않았던 게 유독 우리 집만 더하지는 않았으니, 당시 웬만한 가정의 저녁풍경이었던 시절이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학생이 경찰에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는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6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추모 행렬이 연세대를 출발해 시청 앞 광장까지 가득 찼다. 모인 이들은 젊은이의 이른 죽음 앞에 분노하며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다. 생면부지 낯선 이의 어깨를 스스럼없이 두르고 함께 내달렸다. 그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동터오는 새벽을 거리에서 맞이하곤 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을 훌쩍 보내고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광장에 섰다. 그때와 다른 점은 30년 전 딱 우리 나이 또래의 딸과 아들이 곁에서 더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를 외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차다. 무엇보다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을 자조적으로 읊으며 힘겹게 현실과 마주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달려 나온 까닭이다. 역사를 타락시키는 것은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두려움’이다. 대한민국은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 있게 거리로 나서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역사는 마침내 진보할 것이라 확신한다.

영화 ‘1987’이 각별하기는 1987년 6월 항쟁을 특정 몇몇 인물의 영웅적 행동으로 치장하지 않고 시대를 아파하는 모든 이의 삶으로 그렸다는 데 있다. 그 결과 1987년 6월 항쟁은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에게 의미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어지는 세대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1987년의 함성과 2016년의 촛불이 낯섦이나 어색함 없이 하나로 합류됐다.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다”(밀란 쿤데라).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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