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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다시 펴는 한서의 무궁화 정신한서 남궁억의 생애 '불굴의 얼' / 김세한 지음

「불굴의 얼」은 한솔 김세한이 쓴 한서의 전기로서 한서의 믿음과 그의 무궁화정신을 잘 보여주는 한서의 일생을 기록한 책이다.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억압과 회유 그리고 각종 고문 가운데서도 순교하기까지 굴하지 않고 끝까지 지킨 ‘얼’, 그 정신을 기리는 「불굴의 얼」은 바로 한서가 지닌 순교의 믿음과 사회구원의 믿음 그리고 그의 시대정신인 무궁화정신을 이르는 것이라 본다.
「불굴의 얼」의 저자인 한솔은 한서의 제자는 아니나 어린 시절부터 한서의 명성을 듣고 제자들 못지않게 한서의 높은 뜻을 숭모하면서 그의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황성신문을 비롯한 각종 신문과 한서의 저술물들, 그리고 한서의 가족과 주위에서 한서를 모셨던 분들의 생생한 증언과 일기들을 기초로 하여, 한서가 순교한 지 20년이 되는 1959년에 「불굴의 얼」이라는 제목으로 한서의 전기를 출간했다.
올해 두 번째 무궁화 주일을 맞아, 한서의 농촌 계몽시작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도서출판 키아츠에서 「불굴의 얼」을 60년만에 「한서 남궁 억의 생애」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간하는 일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하겠다.
종교교회 한서선교회는 한서의 믿음과 그의 무궁화정신을 갈고 다듬어서 선교사역에 이바지 하게 하고 또한 우리의 신앙성장에 디딤돌로 하기 위하여 그의 믿음과 정신을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서에 대한 수많은 저술물들이 있음에도 정작 정신적 지도자로서 신앙구국정신, 교육입국정신, 농촌계몽정신으로 살아 온 한서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다만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한 교육정신분야에 관하여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약 100여 편에 이르는 연구논문이 있으나 정작 무궁화정신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신앙구국정신, 농촌계몽정신 등 정신 분야에 관한 연구는 너무나 미흡한 실정
이다. 「불굴의 얼」 재발간을 계기로 특히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갖고 활발한 연구 작업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기독교계에서의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바 기독역사학, 기독사회학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기독교한국선교 이후 근세사에 새롭게 형성되어진 기독교 가치관에 의한 시대정신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 더욱 간절하다.
「불굴의 얼」은 60여 년 전에 발간된 것으로 내용 중에 한문이 많이 혼용 되었고 또한 쓰여진 단어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고어가 많이 씌어져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현대어로 손질하여 출간하므로 젊은이들도 한서에 대하여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본의 감시와 억압에 지쳐 피해가듯 보리울에 내려가 일찍부터 “지식인들아 농민의 지도자가 되어라”고 권유하던 그 일을 스스로 실천하여 자조자립을 가르치며 근면근로정신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면서 농촌의 새벽을 깨우는 농촌계몽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한서의 삶을 보면서 새마을정신은 벌써 100여 년 전에 농촌계몽정신이라는 씨앗으로 보리울에 뿌려져 1930년대는 전국 방방곡곡에 옮겨져 무럭무럭 자라나 상록수 소설의 주제가 되기까지 하였으며, 그중에서 제일 굵은 가지가 가나안정신으로 이어지고 다시 새마을정신으로 이어져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

설악산 돌을 날라
독립 기초 다져놓고
청초호 자유수를
영 넘어로 실어 넘겨
민주의 자유강산
이뤄놓고 보리라

「불굴의 얼」 첫 페이지 앞에 실려 있는 한서의 자작시로서, 을사늑약이 있은 지 반년이 채 안 되는 1906년 2월, 어느 모임에서 읊은 한서의 자작시이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나라의 국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을 주장함으로서 일본을 상대로 하는 최초의 독립운동인 것이다.
또한 독립은 하되 단순한 왕정회복이 아니라 ‘민’이 주인인 자유민주국가로 독립을 시키자는 것이다. 망했다고 하지만 아직 왕정 하의 관료의 신분으로 또한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유민주체제로 독립시키자는 주장은 일제와 아울러 기존 보수체제에 대한 도전으로서 함부로 내세우기 어려운 주장이며 즉흥적으로 나올 수 없는 세대를 뛰어넘는 시대정신으로서 한서의 앞서가는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다시 보게 해 준다.
한서의 이같은 자유민주정신은 근세사의 시대정신으로 이어져 기독교인들이 주축이었던 1919년 3·1만세운동 후 상해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비록 국민과 영토는 없는 망명정부일지라도 자유민주주의의 대통령 중심제의 민주공화정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라 본다.
또한 해방 후 좌우의 격렬한 격돌 가운데서도 한서의 자유민주정신과 반공정신이 근세사의 시대정신의 주류로 이어져 왔기에 대한민국의 수립이 이루어졌으며, 절체절명의 6·25남침에도 베트남처럼 공산화 되지 아니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본다.
한서는 특히 식민시대 암흑기를 견디어 낸 신앙구국정신, 교육입국정신, 농촌계몽정신 등의 시대정신을 내세우고, 전하고, 가르칠 때에 언제나 무궁화를 매개(무궁화 자수본, 어린이놀이, 노래가사 등)로 하였다.
그는 보리울에서 손수 무궁화를 기를 때에 그의 시대정신을 비료로 주었고 전국교회와 학교를 통하여 농촌지도자들에게 전할 때는 그의 시대정신으로 포장하여 전해졌기에 일제는 무궁화묘목과 애국독립운동은 한서 남궁억과 동의어라고 여기고 묘포장의 묘목은 물론 전국 마을마다 심겨진 무궁화를 뽑아 불태웠으며 반공정신이 투철하였던 한서에게 십자가당 사건이라는 가당치않은 올무를 씌워 갖은 악행으로 고문함으로서 순교에 이르게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한서선교회는 한서의 시대정신을 모두 한데 묶어 <한서의 무궁화정신>이라 부르고 있다. 감리교회에서는 매년 4월 첫째 주를 무궁화주일로 지키므로 감리교회의 역사와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하여 올해 4월 첫째 주일인 1일 부활주일에 전국 감리교회가 무궁화주일로 지키고, 무궁화 심기를 하며 한서의 무궁화에 관한 백일장, 포럼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잊혀가고 있는 기독교민족지도자로서 감리교회의 자랑인 한서의 믿음과 그의 무궁화정신이 재조명될 것이며 다음세대로 이어져 내려갈 것이다.
또한 2016년 11월 「산림자원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공포됨으로서 무궁화의 보급 관리 및 무궁화 관련 각종 문화행사(작품공모, 심포지엄, 포럼 등)와 무궁화 명소조성 및 연구개발사업 등의 진흥사업이 지속적으로 체계 있게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
무궁화를 국화로 지정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무궁화 관련단체들이 애국독립운동의 상징이며 국가의 표상인 무궁화를 길이 기념하자는 뜻에서 2007년부터 8월 8일(∞표시가 두 개로)을 무궁화의 날로 정하고 국가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무궁화를 심고 가꾸고, 각종 무궁화 관련 문화행사 등과 더불어 선비정신의 뒤를 이어 근세사를 이끌어온 한서의 순교의 믿음과 사회구원의 믿음 그리고 그의 무궁화정신을 찾고 기리는 일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현포 원로장로. 종교교회 / 한서선교회 연구위원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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