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설
감리회를 돌아보며

부활절이 지나고 감리회의 연회 시즌이 시작됐다. 언제부터인가 연회는 큰 이슈 없이 연례행사처럼 지나가곤 했는데, 올해는 조금 다른 조짐이 보이는 모양이다. 처음 시작된 중부연회부터 크고 작은 문제로 잡음이 드러났고, 앞으로 열릴 연회 가운데 순탄치 못할 곳이 더 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감리교회가 교단적으로 여전히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연회까지 그런 갈등과 혼란이 연장된다면 매우 곤란하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드러내 해결하는 것이 옳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고쳐야 마땅하다. 하지만 작금에 감리교회 안에 벌어지는 혼란과 소동은 상당수가 사전에 충분히 차단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게 된다. 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제가 커져버린다는 지적이다.
‘거전보과’(鋸箭補鍋)라는 말이 있다. 책임질 일은 하지 말고, 문제는 더 키우라는 말이다.
어느 사람이 화살을 맞았다. 화살을 맞은 상태로 의사에게 달려갔다. 의사는 톱을 가져와 드러난 화살을 잘라내고는 말했다. “다 됐소.” “몸속에 박혀있는 화살촉은 어떻게 합니까?”묻는 환자에게 희사는 대답한다. “난 외과요. 거기는 내과 소관이오.” ‘거전(鋸箭)’, 즉 ‘화살톱질’이란 말이다.
솥에 작은 구멍이 났다. 땜장이에게 가져가니 녹을 제거한다면서 망치로 두드려 오히려 구멍을 더 크게 만든다. 놀라는 솥 주인 앞에서 솜씨 좋게 메워주며 말한다. “이것 보세요. 하마터면 새 솥을 사야할 뻔 했어요.” 주인은 고맙다며 비용을 치른다. ‘보과(補鍋)’, 즉 솥 땜질의 요령이다.
이것이 청대의 기인 이종오(李宗吾)가 쓴 ‘후흑학’에서 제시한 판사이묘(判事二妙), 즉 일을 처리하는 두 가지 묘법이다. 시늉만 하고 책임질 일을 절대 하지 않거나 혹은 문제를 부풀려서 해결해 준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안하고서 유능하다 평가를 듣거나 혹은 멀쩡한 상태를 오히려 엉망으로 만들고 나서 수습의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다. 
이런 일은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도 찾아보면 판사이묘의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최근 감리교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논란이 그런 경우가 많다. 감독회장 선거 무효소송을 둘러싼 논란이나 입법의회 무효소송, 백만전도 운동에 대한 시비나 교회매각소동, 중부연회에서 불거진 지방경계논란이나 기독교타임즈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무질서도 거전보과의 일침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어느 특정한 세력을 탓하려는 말이 아니다. 이 과정에 개입해 있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처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탈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를 아는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갈등과 대립, 혼란과 무질서가 여전한 감리교회의 슬픈 현실 앞에서 모두가 새겨들을 말이라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진위 판단부터 기본이다. 시비가 있다면 참과 거짓을 가려내야 하고 그것을 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들어갈 수 없다. 감리교회에서 벌어지는 혼란이 조기에 수습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건의 본질, 진위 판단을 하기 이전에 정치적 이권을 따지는 진영논리나 학연, 지연 등 친소관계에 따른 편가름부터 습관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연회마다, 어떤 시비를 제기하려거나 시비에 따라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책임 있는 이들이라면 먼저 스스로의 자세부터 가다듬어 법과 원칙, 절차에 따라 문제들을 풀어가 주기를 바란다.
숨기고 덮는다고 능사는 아니다. 고름이 있다면 짜내야 하고 적폐가 있다면 도려내야 한다. 기왕에 벌어진 일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수습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그 일을 맡아야 한다. 아무쪼록 ‘판사이묘’, 인간적인 얕은 수가 아니라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청지기의 자세로 감리교회 안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습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