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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익어가는 씨의 비유(마가복음 4:26-29)

모든 성경 번역에서는 이 비유의 내용 중 ‘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역과 개정개역,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라 붙이고 있다. 하지만 표준새번역 개정판에서는 본문 28절에 나오는 αὐτομάτη에 착안하여 ‘스스로 자라는 씨 비유’라 하고 있다. 이 비유를 소개하는 다른 주석서 등에서도 위에 소개한 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비유에 나오는 씨의 한살이는 다음과 같다. 씨가 뿌려지고, 싹이 나고, 자라고, 이삭을 내고, 낟알을 내고, 열매가 익는다. 물론 위에서 소개한 ‘자라는 씨’도 본문에 어울리지만, 29절에서 ‘낫을 대고, 추수 때가 되었다’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제목을 ‘저절로 익어가는 씨의 비유’로 붙여 보았다. 익어간다는 의미 속에는 자연스럽게 자란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고, 또한 추수와 연관해서도 잘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물론 유사한 내용이 마 13:31-32절(겨자씨 비유)에 나오기는 하지만, 몇몇 단어, 즉 ‘사람, 씨-겨자씨, 땅-밭, 자람’만이 공통적일 뿐 평행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마가복음 본문 바로 뒤에 겨자씨 비유에 대한 본문이 나오고, 그 본문이 오히려 마태복음의 본문과 평행하기 때문이다.
많은 비유들이 도마복음과도 유사하지만, 이 비유는 도마복음에서도 내용적으로 유사한 평행문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비유는 마가복음 저자만이 가지고 있던 특수자료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본문 안에는 마가 공동체가 놓여 있던 삶의 자리가 농후하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마치 마태복음 13장이 그렇듯, 하나님 나라의 비유가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1-9절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26-29절에서는 저절로 익어가는 씨의 비유, 30-32절에서는 겨자씨 비유가 나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개의 비유에서 내용을 이루는 주된 단어들이 반복되거나 유사어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씨, 땅, 뿌리다/심다, 싹, 자라다, 열매를 맺다’ 등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 세 비유의 제목도 모두 ‘씨’와 관련되어 있다. 세 비유의 내용역시 작디 작은 씨에서 큰 산물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거의 동일하다.
'저절로 익어가는 씨의 비유'가 다른 비유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먼저 27절의 ‘밤낮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됐는가를 알지 못 한다’와 28절의 ‘저절로’이다. ‘밤낮 자고 깨고 하는 동안’은 a-b-a‘-b’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밤엔 자고 낮엔 깨어’를 강조해 준다. 즉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삶을 의미한다. 씨가 자라는 데에는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씨는 씨를 뿌린 사람과는 무관하게 자란다고 하는 것을 암시해 준다. 특히 여기서 낮과 밤이 바뀌고, 깨는 것과 자는 것이 바뀌어 나오고 있는 것은 일몰 후부터 하루가 시작된다고 여겼던 근동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본문의 주체를 ‘씨를 뿌린 사람’에서 ‘그 사람이 땅에 뿌린 씨’(27b절)와 ‘그 사람이 씨를 뿌린 땅’(28절)에로 옮겨가게 한다. 더욱이 본문에서 씨 뿌린 사람을 소개할 때에 농부라 하지 않고, ‘어떤 사람, 혹은 그 사람’이라 표현한 것도 씨 뿌린 사람은 단지 땅에 씨를 뿌리는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그 씨는 자라서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의미들을 종합해보면, 씨가 땅에 뿌려져서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요, 그야말로 저절로 자연스럽게 생장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땅은 열매를 저절로 맺게 한다’는,  왜 밤낮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했는가를 설명해준다. 저절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αὐτομάτη(저절로)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저절로, 스스로, 자연스럽게 오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땅이 열매 맺는 과정은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고, 이삭을 내고, 이삭의 알찬 낟알을 내고 열매가 익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28절의 ‘πρῶτον - εἴτα - εἴτα’(처음에는 -- 다음에는 -- 그 다음에는 --)는 내용을 점점 고조시키는 점층법에서 사용되는 표현이다. 즉 하나님 나라는 처음에 마치 씨처럼 아주 작고 미미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느낄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또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성장하고,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스럽게 저절로 점점 확장되어 가고, 결국에는 알찬 낟알처럼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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