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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노랑머리 최준식 목사의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목회이야기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잠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시편 127:1-2)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란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배시간마다 조는 사람들은 이 말씀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날 무지 사랑하시나봐~ 예배 시간에 자는 잠은 정말 꿀맛이야!”
잠은 일차적으로 휴식, 안식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도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잠보다 먼저 나온 몇 문장을 보자. ‘성을 지킴, 파수꾼의 깨어있음,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다. 이는 잠과 대조적이다. 쉼 없이 성공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피곤한 인생의 일면을 보여준다. 피곤한 인생은 자신이 설정해 놓은 목표와 야망을 갈구한다. 그런데 여호와는 ‘잠’을 주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길 원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올인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인생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개념이다.
사람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길 원하고 그걸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필요한 것을 주실 때 무지한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감사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왜 하나님이 이리하셨는지에 대한 섭리를 깨닫고 감사한다. 이럴 때가 참 많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여정속에서도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내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 예를 들어 오이도에 터를 잡았을 때, 임대로 들어온 338평의 땅과 120여평의 건물을 3년 안에 사길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정도로 교회가 성장하고 힘이 생기길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그곳을 28개월 쓰고 나왔고 학교 앞 분식점을 하게 되었다. 예배도 거기서 했다. 분식점교회가 된 것이다.
솔직히 이 과정이 달갑지 않았다.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뒤통수를 맞고 온갖 루머에 휩싸이고, 땅과 건물이 팔려서 10톤이나 되는 짐을 컨테이너박스에 옮겨 보관하느라 몸에서 소변냄새가 날정도로 노동했을 때. 내 앞에서 3개월간 공들여 인테리어 했던 예배당을 포크레인으로 부수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봤을 때. 왜 이런 일들을 겪게 하는지 몰랐고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목회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만약 이 과정이 없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나 역시 교회성장주의에 매몰되어 본질과 상관없는 행보를 걸었을지도 모르고 지금 교제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들었을 텐데도 세상이 목적이 아닌, 교회를 목적하고 살아갔을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 즉 내게 가정이 사역보다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도 이 과정이 없었으면 몰랐을 것이다. 내게 있어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주신 잠이다.
내가 원하진 않았으나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신 하나님. 사랑과 섭리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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