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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유통시키는 전도자

이용남 선교사가 쓴 「복음에 미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장래가 보장된 엘리트 목회자들이, 그리고 미래가 밝았던 평신도 선교사들이 참혹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이 땅 조선을 향해 올 수 있었던 그 힘은 조선의 영혼을 향한 불타는 사랑, 바로 영혼 사랑의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한 영혼을 향한 그 사랑의 마음이 온갖 부귀와 영화, 보장된 미래를 다 내려놓고 이 땅 조선으로 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지고, 그 후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간직했던 우리 기독교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그것은 움켜쥐고 있는 것도, 그리고 주고받는 것도 아니라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사랑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한 쪽에서 또 다른 한쪽으로 계속해서 흘러 나가는 일방통행의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근본이며 시작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사랑이 예수님에게로 흘러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죄악으로 인해서 도저히 소망이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오셨고, 바로 그 사랑을 우리 가슴속에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위에서 우리 대신 죽는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주신 사랑, 바로 십자가의 사랑을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에게서 예수님에게로,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로 흘러 들어온 그 사랑의 물결이, 오늘 우리들 앞에서 멈추어 서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 교회안과 우리 성도들의 심령 속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들어 왔는데,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들은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 세상을 향해서 흘려보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랑이 지금 우리들 앞에서 멈추어 서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사랑은 우리들끼리만의 쌍방의 사랑이오, 그냥 우리 안에서만 맴도는 사랑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받은 그 사랑을 나 혼자 움켜쥐고 있어서도 안 되고, 너하고 나하고 주고받는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 새 가족, 연약한 사람, 그리고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해 흘러 보내야 합니다.
사랑은 나누라고 주셨습니다. 사랑은 밖으로 표현하므로 쏟아내라고 주셨습니다. 특별히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차원이 아니라, 아낌없이 다 주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처럼 대가를 바라지 말고 그냥 주고, 나누라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이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조직이나 사람을 통해서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을 소유한 우리들이 그 사랑을 세상을 향하여 흘러 보낼 때에만 사람들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으로 흘러 보내는 사랑의 유통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전도하고 있지 않다면 주님의 사랑은 나에게서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전도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세상의 영혼들을 간접적으로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며 오늘도 세상을 향하여 십자가의 사랑을 흘러 보내는 사랑의 유통업자, 위대한 전도자가 됩시다.
전도! 하면 됩니다. 전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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