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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만사(人事萬事)전병식 목사(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욱리자(郁離子)가 집정(執政; 고대 조정의 최고 정무장관)에게 묻는다. “오늘날 인재 등용은 단지 숫자를 채우려는 것이오, 아니면 현량(賢良)으로 여겨 그들에게 의지하며 잘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오?” “현량을 뽑아 임용할 뿐”이라는 집정의 대답에 욱리자가 반박한다. 농부가 양에게 밭을 갈게 하지 않고, 상인이 돼지에게 수레를 끌지 않게 하는 것은 “일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일을 그르칠 것을 겁내기 때문입니다. 하, 은, 주 삼대(三代)에 선비를 임용할 때는 반드시 배우게 한 뒤 관청에 들이고, 실무로 시험해 능력을 확인한 후 임용했습니다. … 오늘날 풍기를 관장하는 관원은 … 천하의 현인들을 공평히 대하지 않고, 온통 세족(世族)의 후손과 친근한 관계에 있는 사람 가운데 게으르고 멋만 내는 어린애들만 뽑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농부가 밭을 아끼고, 상인이 수레를 아끼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유기, ‘욱리자’, 신동준 옮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인사와 등용에 말도 탈도 많았다.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회전문 인사’니 ‘오기 인사’니 ‘보은 인사’니 하는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폐를 청산하고 쇄신하여 새로운 정치를 하겠노라는 대의를 표방한 정부의 첫 내각과 주요 인사의 등용으로서는 서툴다 못해 동아리 인사라는 비난에 처하기도 했다. 물론 졸지에 야당이 된 이전 정부 인사(人士)들이 분(憤, 忿, 噴)과 울(鬱)을 드러내는데, 현정권에 대해 비우호적인 언론이 함께 해준 결과이기도 하다.

“밭을 갈고 수레를 몰 때조차 그에 합당한 동물을 찾아야”하는데, 사람을 쓰는 데 있어 능력이 적합한지를 따지지 않고, “친소관계나 겉모습에 의존”하는 인사는 곧 패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유기(劉基)는 지적한다. 욱리자가 지적하는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인사의 대표적인 부류는 세주(世胄; 귀족의 후예)와 닐근(昵近; 친근한 이) 그리고 도나수(都那竪; 대도시에 사는 유력 집안의 자제) 등이다. 이외에 권력을 잡은 자가 등용하는 주요한 인사 대상은 권력을 잡기 위한 도모에 상당한 역할을 한 이른바 참모진이 그 부류에 속하게 된다.

감독회장과 감독이 선출되어 새로운 인사가 시작되면 이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하느라 연회와 본부는 오히려 선거 때보다도 더욱 심한 혼란으로 빠져든다. 그 인사가 감독회장과 감독의 임기 내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거나, 발밑의 가시가 되어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논공행상에 따른 인사거나 측근을 등용하는 정실인사(情實人事)거나 사실 목적은 하나에 있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鞏固)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손아귀에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권리를 행사하자니 만만한 졸개나 측근을 자기 권력의 주위에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변 인사(人士)들의 간언이나 고언(高言)에 따라 본부의 일이 ‘이리로 저리로’ 가거나,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다.

약 700년 전에 허명규는 인내를 권고하는 글인 ‘권인백잠(勸忍百箴)’을 펴냈는데, “권력을 탐하는 것은 소인배다”라는 말이 첫 장의 제목이다. “오직 우둔한 소인배만이 권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쥔다”가 첫 문장인데, 하위하는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오직 우둔한 자만이 자신을 위해 권리를 다툰다’고 할 것이다…. 당선종(唐宣宗) 때 정로(鄭魯)·양소복(楊紹複)·단환(段環)·설몽(薛蒙)이 서로 결탁하였는데 조정에서 일을 처리할 때 그 사람들의 의견을 참조하였다. 그때 사람들은 ‘정·양·단·설 그 네 사람은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하였다.”(허명규, 하위하(편), ‘인경(忍經)’, 김동휘 옮김) 우리는 흔히 이러한 상태나 지경에 이른 패거리를 사람의 숫자대로 ‘사인방(四人幇)’ 이라거나 ‘문고리 권력’ 이라거나, ‘실세’ 또는 ‘십상시(十常侍)’라 일컫는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연회와 총회의 수장 자리가 권력의 곳간이 아니라 영적, 행정적 권위의 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여 있어 썩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쳐 영혼과 생명을 두루 살리는 샘 말이다. 안식년 중인 후배 목사님을 모셔 주일에 말씀을 들었는데, 그중 한 마디가 계속 마음속을 휘저어 놓고 있다. “목사님들이요, 교회든 자리든 떠나지 못하고 연연하는 건 ‘심고, 물을 주었으면, 거기에 만족해야 하는데 자기가 그 열매를 따먹으려고 하니까’ 못 떠나는 겁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린도전서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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