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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의 피켓 시위도현종 목사

감리교회 어리석은 직무 정지 중인 0윤0 목사가 서울 장안의 어느 교회에서 일일 피켓 시위를 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이 모습을 접하고 연산군과 피켓 시위를 벌인 간신 임사홍이 소낙비 속에서 떠오른다.

피켓 시위, 이것은 간신들이 하는 전형적인 수단과 방법이다. 나는 오늘 0윤0 목사를 간신으로 임명한다.

어린 성종은 누님뻘인 왕비 보다는 후궁들을 좋아했다. 소용 정 씨와 엄 씨를 찾는 발길이 잦았고, 제헌왕후 윤 씨는 이를 바라 보고만 있지 않았다. 윤씨는 연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후궁들이 자신과 세자를 죽이려 한다는 투서를 올려 정소용과 엄소용을 곤경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투서의 실질적인 작성자가 윤 씨로 밝혀지고 윤 씨의 처소에서 독약이 발견되자 성종은 왕비의 폐출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때마다 윤 씨를 변호한 것은 ‘원자의 생모’, 즉 왕위 계승자 연산군의 어머니라는 확실한 무기였다.

그러나 성종과 윤 씨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성종이 후궁을 찾은 것에 반발해 윤 씨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사건이 벌어지면서 두 사람의 파국이 벌어진다. 여기에 시어머니 인수대비 한 씨가 가세했다. 조신한 며느리 보다는 아들과 싸움하는 며느리의 이미지를 보이는 윤 씨가 시어머니에게도 달가울 리 없었다.

인수대비는 마침내 성종에게 윤 씨를 폐위할 것을 요구했고, 1479년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왕비가 사가에 쫓겨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1482년 성종이 내려준 사약을 마시고 죽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1494년 성종은 죽으면서까지 100년 동안 폐비 윤 씨의 일을 거론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1504년 마침내 이 뇌관을 터뜨리는 자가 등장하게 된다.

연산군의 측근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온갖 방법을 기획하고 있던 간신 임사홍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계십니까?”

연일 피켓을 던진 임사홍의 시위는 수많은 선비들의 죽음과 귀양으로 점철되는 갑자사화의 서막이었다.

성종의 장남인 연산군의 이름은 융으로 장남으로서 왕위를 계승했다는 정통성은 별다른 정치적 견제를 받지 않는 요인이기도 했다. 사실 조선은 왕위계승에 있어 장자상속 제도를 원칙으로 했지만 문종이나 단종을 비롯한 일부 왕을 제외하고는 정종, 태종, 세종, 세조, 성종 등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왕은 모두 장남이 아닌 신분으로 왕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것이 오히려 연산군의 폭정을 가속화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연산군의 측근세력 간신 임사홍은 그의 어머니 윤 씨의 폐비사건을 연산군에게 알려 새로운 사화를 기획했다. 연산군의 생모 윤 씨가 죽을 때 연산군은 7살의 어린 나이였고, 조정에서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간신 임사홍은 연산군에게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정보를 흘렸다. 윤 씨의 폐비 사건에 사림파들뿐만 아니라 훈구파들도 많이 관련되어 있었는데, 임사홍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사림파와 함께 일부 훈구파까지 제거하려 한 것이었다.

연산군의 분노는 폭발했고, 어머니 윤 씨를 폐출하는 ‘폐비정청’에 참여한 인사들 대부분을 잡아들이게 했다. 윤필상, 이극균, 성준 등 성종 시대의 대신들이 처형을 당했고, 희대의 풍운아 한명회는 이미 사망했지만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이 사건이 1504년에 일어난 갑자사화로서 성종대의 훈구공신을 비롯하여 사림파의 씨를 말릴 정도로 대규모의 정치적 살육이 전개되었다.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생모를 폐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에 대한 광적인 복수극으로서, 이 사건으로 사림파는 다시 한 번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갑자사화 이후 언론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국가를 사용화(私用化)하는 연산군의 ‘흥청망청’의 정치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향락과 퇴폐가 극에 치달으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 사회는 독재 군주 연산군의 폭정과 방탕을 오래도록 방치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지는 않았다.

임사홍이 고의로 아들을 참소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역시 최고의 간신이다. 권력은 부자의 정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잔인했던 것이다.

감리교회도 간신들로 끓고 있다. 간신들이 넘쳐난다. 피켓 시위가 간신의 입장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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