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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받아 나선 이 몸김장호 목사(덕수교회)
김장호 목사 / 덕수교회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 만 따라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 찬송을 즐겨 부르지는 않지만 가끔씩 가사를 인용하기는 한다.

수련목회자의 과정을 마치고 아버지는 당신이 섬기시는 교회에 세습을 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단 번에 거절했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에도 빈 교회는 없었다.

그러던 2010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4시간 앞두고 동기 전도사로부터 임지 추천을 받았다. “형, 섬인데 단독목회 가실래요?” 순간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섬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환경과 여건과 조건들이 모두 맞아야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섬이다.

시무 장로님께서 수요일에 오셔서 설교해 달라고 부탁을 받고 연안부두에 갔더니 풍랑 주의보로 인해서 배가 결항이란다. 주일에 다시 오셔서 설교해 달라고 하셨다. 주일아침 일찍, 연안부두로 갔다.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10분 거리인 덕적도. 배가 한 30분을 가더니 자월도 해상쯤에서 갑자기 멈춘다. 선장이 선내 방송을 했다. “풍랑 주의보는 발효가 되지 않았지만, 높은 파도로 인해서 선장 직권으로 회항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하나님 첫 목회지를 향해서 가는데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무 응답이 없으셨다. 연안부두에 돌아와서 장로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장로님도 난처해하시며 수요일에 오셔서 설교해 달라고 하셨다. 첫 목회를 향한 발걸음과 뱃길은 수월하지 않았다.

수요일에 안전하게 덕적도에 들어왔다. 덕적도에서 제일 고개가 높은 성황당 고개를 넘으며 장로님께서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우리 교회라고 소개해 주신다. 내 눈에는 하나도 안 보이는데 말이다. 교회에 거의 다 왔을 쯤, 그때 내 눈에 허름한 건물 하나 보였다. 십자가도, 간판도 없는 건물인 덕수교회였다.

덕수교회에 부임하고 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덕수교회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었다. 故김광우 목사님(정동제일교회 담임)과 조화순 목사님께서 목회를 하신 곳이었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다음날 인사 위원회가 열리고 문제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섬으로 들어오는 날 아침, 아버님께서는 함께 예배드리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심정으로 목양하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목회는 성도들을 사랑해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사를 하고 하루 이틀 지냈다. 마음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지 사택과 교회를 하루에 열 번 이상도 오르락내리락 했나보다.

도시에서 씀씀이가 있었던 터라 한 달이 지나니까 카드 청구서가 큰 바위처럼 큼지막하게 날아왔다. 사례비를 받고 카드 값을 갚아야 다음 생활이 될 텐데,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첫 열매는 하나님께’를 교육 받아 첫 열매를 바로 하나님께 드렸다.

재정부장을 맡으셨던 장로님께 전화가 왔다. 잠깐 사택에 들르신단다. 오시더니 두툼한 봉투를 꺼내시더니 울먹이신다. 첫 열매를 드린 마음에 당신이 감동을 받아 생활비에 보탬이 되라고 얼마를 가져오신 것이다. 덕수교회에 40년 가까이 출석하고 장로로 재직 중에 있고 그동안 수많은 담임 목회자들이 지나가셨지만 첫 열매를 드린 목회자는 처음이라고 한다.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울음을 참고 마음껏 축복 기도를 해드리고 보내드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사기꾼 목사 되지 않고 꼭 이들의 사랑으로 인해 목사가 된 것에 배신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평탄치 않는 중에 덕수교회에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게 됐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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