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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혼란의 逆說977호 사설

감독회장 직무대행의 피선거권을 다룬 총특재 판결로 감리회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16일 홍성국 목사가 위원장으로 소집한 총회특별재판위원회가 다룬 ‘감독회장 직무대행 선출무효’ 건과 ‘지방경계 기준시행 직무집행정지 상소’ 두 건의 재판은 모두 지방 경계법 논란으로 시작됐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위원들의 자격 유무를 떠나 판결문 내용을 확인해보면, 하나의 재판부가 당일 열린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반된 판결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김찬호 목사(은혜교회), 김태현 목사(강화읍교회), 박윤호 목사(하늘중앙교회)가 중부연회 대표자인 윤보환 감독을 상대로 제기한 ‘지방경계 기준 시행 직무집행정지 상소’의 건은 이미 해당 교회가 감독의 행정명령에 불복해 연회와 총회행정재판에서 시정명령을 받았음에도 상소한 재판이다. 내용은 이렇다. 강화지역은 1967년 6월 12일에 강화 동·서 두 지방으로 분할됐다. 이후 1997년 3월 25일에 강화동지방은 강화 동·남으로 분할됐고, 1999년 3월 24일에 강화 서지방이 또다시 강화 서·북 지방으로 분할됐다. 원고 김찬호 목사가 담임하는 은혜교회는 강화읍 관청리에 소재하다가 2010년 12월 11일 강화읍 남산리로 성전을 이전했고 이후 계속해서 강화북지방에 소속돼 왔다. 김태현 목사가 담임하는 강화읍교회는 1998년 교회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강화읍 국화리에 소재하며 강화북지방에 소속돼 왔고, 박윤호 목사가 담임하는 하늘중앙교회는 2015년도 3월 3일 교회설립 당시 강화읍 관청리에 소재하다가 2016년도 9월 10일에 성전을 이전했지만 현재까지 강화북지방에 소속돼 왔다.

이후 중부연회 윤보환 감독이 올해 1월 30일에 장정 제9편 제3장 제1608단 제8조(지방경계의 확정)을 근거로 경계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따라 은혜교회와 강화읍교회는 강화북지방에서 강화동지방으로, 하늘중앙교회는 강화북지방에서 강화서지방으로 지방 이전을 명령했다. 그런데 원고들이 이같은 행정명령에 불복해 총회행정재판에 소를 제기했고, 총회행정재판위원회는 지난 5월, 지방경계조정을 명령한 감독의 행정명령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이번 총특재가 만장일치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총특재는 판결문에서 지방 경계와 지방회 분할 및 경계조정에 있어 지방회나 연회가 독자적으로 또는 감독 독자적으로 기존에 존재하는 지방회 경계를 임의 조정·변경하거나 개체교회의 지방회 소속 변경을 결정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원고들 소속 교회에 대한 지방회 경계 조정에 대해서는 “해당지방 실행위원회 결의와 지방분할경계조정위원회 심의와 연회보고절차를 통해 원고들 소속교회 관련 지방회 경계기준의 조정 내지 지방회 소속을 조정한 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 지방경계기준은 원고들 소속교회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강릉중앙교회의 경우 과거 강릉지방이 분지방 합의를 한 뒤 강릉남지방에 속하게 됐고, 현재의 강릉남북지방이 동일한 합의를 이어가고 있는데다 관할 연회인 동부연회 역시 연회 현장에서 지방 합의 내용을 그대로 받았음에도 총특재는 강릉중앙교회가 지방경계법을 어겨 해당구역 목회자의 피선거권이 제한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특히 강릉남·북 지방의 경우 지방경계로 인한 갈등 혹은 지방경계를 조정하라는 감독의 조정명령조차 없었다.

동일한 지방경계 사안인 두 건의 재판에 대해 어떻게 상반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총회특별재판 뿐 아니라 교회재판은 이미 정치판의 연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판결 이후 총특재 법조인이 판결의 무효와 효력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법원에 제기해 무효 반결을 받은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보니 교회재판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해 입법의회에서 교회 재판청구 비용을 700만 원으로 상향조정 후 교회재판은 더욱 현장에서 멀어졌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일선 목회자와 성도들은 억울한 일이 있어도 소를 제기할 여력조차 안된다. 더욱이 대다수 성도들은 총특재가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법은 일관성과 공평성이 있어야 한다. 일관성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는 같은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과거 동일한 사안에 대해 판결한 전례(판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공평성은 공동체 구성원 누구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어서는 안되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는 같은 결정이 있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이다.

법에 모든 사건의 해결책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법을 해석하는 범위에 대해서는 재판부와 공동체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사람에 따라 유, 무죄가 달라지고, 판단과 형량이 때에 따라 오락가락,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법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다. 그러나 그 보루가 무너진 공동체에서 약자들은 어느 곳에도 설 수 없는 약육강식의 잔인한 본능만이 공동체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무너진 감리회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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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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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바닥으로 하늘을 2018-08-27 20:33:21

    가린다고 하늘이 가려집니까? 같은 사안을 다르게 판단할수 있는 대가리가 신기할 따름이네요. 그 딸이는 머리로 샹각해낸 것들이 죄다 망하는 갓들 뿐이니 감리교에 저런것들을 들인게 잘못이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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