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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begin again)허태수 목사(성암교회)

977호부터 허태수 목사의 '통의'가 연재됩니다. 통의(通義)는 '세상에 널리 통하는 도리와 정의'를 의미합니다.

허태수 목사(성암감리교회)

첫 사랑의 순간이 까마득한 태고의 전설이 돼 버린 사람들, 이미 서로를 다 알아 버린 사람들, 그래서 더 이상 모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처럼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들을 그 근본에서 의심하고 전복하는 일이다. 

첫 사랑의 기억을 잊어버린 우리는, 아니 첫 사랑의 뜨거움을 견디기 힘들게 된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쌓아 올린 눈으로 남편이나 아내를 그리고 친구와 이웃을 재단하고 정의한다. 그러다가 자식을 낳거나 직업을 갖거나 어떤 신념이나 종교를 신봉하게 되면 사랑 따위는 잊어버리고 그 일을 위한 동업자적 관계를 만들어 산다. 그리고는 그 동업자적 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사랑이라 착각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처음을 잊어버린 우리는 나와 당신이 둘이라는 사실, 나와 너가 서로 모른다는 사실, 나와 너가 어떤 인연으로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차이를 유지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하지만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나와 너가 둘이라는 사실,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 둘 사이의 결코 동일화할 수 없는 차이를 회복하는 일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모르는 사람으로 재발견하는 일 그것이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의 출발점이다.

시몬 베유는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나는 내 사랑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분명히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에 관해서 어떤 말을 할 때, 내가 그 말을 하면서 그리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어떤 것도 하나님과 닮지 않았음을 확신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시몬 베유의 하나님은 있는 하나님이면서 없는 하나님이요, 아는 하나님이면서도 모르는 하나님이다. 나의 편견과 선입견에 결코 갇힐 수 없는 분이며 그렇다고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주는 제삼의 원리나 존재를 허락하는 분도 아니다. 공통분모를 만들고 동업자적 계약관계를 만드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분이다. 아마도 이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곧 언제나 처음처럼 살아가는 신앙의 삶일 것이다.

진정으로 다시 시작하려면 시몬 베유가 하나님을 향해서 고백했던 그 표현을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위해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에 서로 안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아는 그대에 관한 어떤 설명이나 정의도 그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대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영화 제목처럼 비긴 어게인(Begin again)할 수 있고, 둘의 모름과 차이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감리회가 처음으로 돌아가려면 지도자나 제도를 바꾸기 이전에 ‘차이’와 ‘모름’을 회복해야 한다. 이미 이 교단에 처음의 기억은 거의 없다. 유전자처럼 우리의 체내에 뿌리 내린 갈등의 모체가 되는 편견과 독선만이 있을 뿐 차이와 모름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으로부터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하고 다시 시작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독선과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서로의 차이와 모름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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