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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방향을 바꾸자이진오 목사(인천 세나무교회)
이진오 목사(인천 세나무교회)

한국교회는 지난 시절 우리사회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곳을 보듬고 돌봤다. 밥을 굶는 사람에게는 밥을 나눠줬고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환자를 위해서는 병원을 세웠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 저항을 했으며 군사독재 시대에는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롭고 성실했으며 정직하고 정의로웠다. 이런 가운데 부모들은 자신은 교회에 못 나가도 자녀를 교회에 보냈다. 교회에 가야 사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갔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가장 처참한 상태로 추락했다. 한국교회의 신학적 부패와 윤리적 타락은 도를 넘었다. 많은 교회사 학자들은 한국교회가 중세시대 '종교개혁' 이후 가장 부패한 교회가 됐다고 지적한다. 신학적으로는 극단적인 이원론과 혼합주의가 가득하고 윤리적으로는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 욕망은 끝이 없다. 제자들은 은과 금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살리는 믿음과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교회에는 은과 금은 넘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잃어버렸다.

한국교회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올림픽 구호를 닮았다. 더 큰 교회를 만들며 더 높은 권력을 차지하고 더 강한 힘을 행사하려고 한다. 올림포스 신전의 제우스를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차이가 없다. 광야에서 아론과 백성들이 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섬기며 기뻐했듯이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알’(풍요)과 ‘아세라’(번영)를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는 교회 대형화의 욕망이 있다. 어떤 신학적 타락도 어떤 윤리적 부패도 교회만 성장하면 이해되고 용서된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정욕의 탐욕 등이 이루고 있다.

도시의 발달은 인구 밀집을 가속화시켰고 기독교의 개교회주의는 지역교회의 대형화를 확산시켰다. 원래 기독교의 개교회주의는 신자 개인과 지역교회의 신앙적 자유를 존중하고 마을과 지역의 가장 낮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대형교회의 등장은 공동체와 가족이었던 지역교회를 마치 거대한 백화점과 극장과 같이 변모시켰다. 마치 대기업의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붕괴 시키듯이 대형교회는 지역 작은 교회들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대형교회 분립과 개척은 교회 명칭과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해 지교회가 지교회를 소유하게 했다. 이는 지방회와 총회 등의 치리를 무력화시키고 공교회성을 깨뜨렸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특별한 방향이 있고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 모습으로 돌아가면 된다. 초대교회는 작은 교회였기에 믿음과 사랑의 가족이었고 공동체였다. 크려고 했지만 크지 못한 교회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건강한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진실한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지역교회의 공공성, 거룩한 공교회성을 지향하는 건강한 작은 교회로 다시 재편돼 한다. 홀로 빛나는 대형교회가 아니라 더불어 아름다운 건강한 작은 교회로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시대 교회를 바라보며 기대하시는 꿈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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