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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길 떠난 사람들원주청년관 경의현 목사 / 한국 감리교회,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③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파송되기 전 신앙생활을 했던 랭커스터제일감리교회에서 감리회 청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볼티모어에서의 새벽공기는 참 맑았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여정에 대한 소회를 나눈 여행팀은 피곤했지만, 시작되는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비록 몸은 무거웠을지라도, 마음은 가볍고 상쾌했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베다니연합감리교회 성도님들의 정성스러운 아침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먼 곳에서 온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보여주시고, 과분한 사랑을 더해주시는 손길에 타국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이날은 먼 길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렌트카를 타고 필라델피아를 거쳐 랭커스터, 뉴저지, 뉴욕까지 이동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볼티모어 공항에서 차를 픽업한 후 부지런히 길을 나섰습니다. 이동하며 아펜젤러 목사의 숨결을 찾아 떠난다고 하니 마음속에 떨리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날의 일정은 우리 탐방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복음의 경로를 거꾸로 찾아가는 우리 일정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아펜젤러’ 목사의 출발점에 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그의 첫 마음, 그의 첫 숨결, 첫 사명의 향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과연 젊은 청년 아펜젤러에게 임했던 성령의 뜨거움은 어떤 것인지 그의 태어났고, 자랐던 땅에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3시간 후 랭커스터제일감리교회에 도착했습니다. 1802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아펜젤러 목사가 조선에 파송되기 전 신앙생활을 한 곳입니다. 교회를 관리하는 사무원의 안내를 받고 1층 소예배실로 이동했습니다. 소예배실은 정동제일교회에서 2010년에 봉헌했다고 합니다. 복음으로 빚진 과거에서 멈추지 않고, 새롭게 복음의 은혜를 베풀어가는 정동제일교회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아펜젤러 목사의 흔적은 교회의 구석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선교회’에서 아펜젤러가 파송된 이후 매주 시간을 정해 조선과 파송 받은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지하 골방에서 뿌렸던 기도의 씨앗이, 오늘날 같은 열매로 돌아올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 눈물의 씨앗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 서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2층 예배당에서 우리는 합심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복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선 땅으로 향하는 스물다섯의 아펜젤러 목사를 위해 드류대학교 모든 학생들은 메디슨역을 찾아 환송했다. 사진은 드류대학교에서 찍은 단체사진.

랭커스터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뉴저지에 있는 드류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드류대학교는 아펜젤러 목사가 학업을 이어간 곳입니다. 아름다운 교정에서 공부하며 선교의 꿈을 키웠던 아펜젤러 목사를 기억하며 교정을 천천히 돌아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교정에서 숙연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왜였을까요? 잠시 후 그 감정은 드류대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메디슨 역에서 더해졌습니다. 신학교 2학년, 하나님의 뜨거운 부르심 앞에 선교 열망에 사로잡힌 청년 아펜젤러. 스물 다섯살에 선교사로 이역만리 조선 땅으로 떠나는 아펜젤러를 위해 드류신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환송을 해준 장소가 메디슨역입니다.

무엇이 그를 이끌고, 무엇이 그를 떠나게 했을까요? 교회의 역사는 언제나 평안한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거룩한 길을 떠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떠남은 고통스럽지만, 떠남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 앞에 섭니다. 방랑자 아브라함도 그랬고,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평안한 길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단호하게 거절하고 떠난 사람들에 있었기에 오늘날의 교회와 우리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메디슨역을 바라보며 안주와 평안만을 위해 살아왔던 부끄러운 지금을 반성하게 됩니다.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있는 며칠도 낯설고 피곤함을 느끼는데, 아펜젤러를 비롯한 이름도 없던 수많은 순례자들은 얼마나 모진 인내와 아픔이 있었을까요? 믿음 때문에 자신의 평안한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음성 따라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오늘은 부럽습니다. 안주와 평안에 익숙해져버린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아펜젤러가 전달해준 떠남의 선례는 커다란 신앙의 동기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조선으로 가기 위해 아펜젤러가 찾았던 메디슨 기차역에서 찍은 단체사진.

해외문화체험을 다녀와서 / 이유섭 전도사, 원주제일교회

메디슨 기차역에서

용비어천가에 보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릴새, 꽃 좋고 열매가 많나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만큼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어서 단단하고 건강하게 자랐을 테니 바람에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또 영양분을 많이 섭취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됐다. 그만큼 옛 선조들도 뿌리에 대해 늘 중요하게 여겼다. 요한복음에 보면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그 믿음의 뿌리가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 아는 것은 참 중요하다. 수련목회자로 사역을 하던 중 좋은 기회가 생겨서 원주청년관을 통해 ‘한국 감리교회,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해외문화탐방에 참여하게 됐다.

미국에 도착해 탐방단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뿌리였던 뉴저지에 있는 드류대학교에 도착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뉴저지 일대와 메디슨 근교의 지역을 맡아 사역했다. 토요일에는 심방하고 주일에는 설교와 가르치는 일을 했다.

또 아펜젤러 선교사는 타고난 아름다운 목소리와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노래를 가르쳤다. ‘한 사람의 감리교도이며 살아있는 찬송가’로 순식간에 교회를 성장시켰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펜젤러 선교사에 대해 듣고 배울 때는 그가 한국땅에서 했던 선교에만 집중했었는데, 드류대학교에 와보니 아펜젤러 선교사는 선교 때문만이 아닌, 자신의 자리에서 늘 도전적이고 헌신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한국 선교의 첫 발을 내딪기 위해 나섰던 메디슨 기차역을 방문했다. 같은 기차역에 서서 기찻길을 바라보며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그의 삶을 묵상해보니 젊은 나이에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렸던 그의 신앙의 용기가 나에게는 없지만, 그의 지난 삶은 작은 불씨가 돼 내 가슴 속에 새겨졌다. 내 안에 뜨거움을 갖게 해주었던 메디슨 기차역, 몸은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곳에서 품었던 마음은 언제나 오늘을 다시 메디슨 기차역 앞에 서서 질문하게 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뿌리를 기억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나아갔던 그를 닮고 싶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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