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회 교육
“신학은 ‘존중의 학문’… 그리스도인은 경외감 회복하는 삶 실천”협성대 신학과 황현숙 교수, 재직 30주년 특별강연
협성대학교 재직 30주년을 맞아 황현숙 교수가 특별강연을 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원에 대한 거래가 아니라 순수한 순종과 존중, 그리고 경외감 회복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협성대학교 재직 30주년을 맞아 황현숙(신학과) 교수가 특별강연을 열었다. 그는 지난 17일 협성대학교(총장 박민용) 웨슬리관 설봉채플에서 “지난 40여 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30년 동안 신학을 가르친 학자로서 신학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존중의 학문’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나 자신을 싸구려로 쉽게 던져버리는 우리가 아닌 순종과 존중, 경외감 회복으로 나 자신을 존중하는 이유를 반드시 알기 바란다”고 전했다.

황현숙 교수는 이날 10여 권의 저서를 한 권으로 요약한 책 ‘존중’ 출판사인회도 함께 열고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다.

협성대학교에서 30년 동안 재직하며 수많은 감리회 목사와 신학자를 배출한 황현숙 교수는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학사와 동 대학 기독교학과 석사, 독일 에어랑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황 교수는 국내 신학계에 루돌프 불트만의 신학과 성서비평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화여대 허혁 교수의 제자로 1988년 9월부터 현재까지 협성대학교 신학과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존재의 중심’, ‘예수하기’, ‘사랑에 관하여’ 등이 있다.

지난 17일 협성대학교 설봉채플에서 황현숙 교수의 특별강연이 진행됐다.
황현숙 교수는 특별강연 참석자들에게 10여 권의 저서를 한 권으로 요약한 책 ‘존중’을 선물로 증정했다.

 

김목화 기자  yesmoka@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목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5
전체보기
  • 서동성 2018-10-05 15:42:37

    5. 따라서 '신학을 여타 인문학의 한 장르로 보고 있음이며 신학의 인간학화하여 '존중'이라 함'이란 말은 오해가 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또한 기탐의 제목 “신학은 ‘존중의 학문’… 그리스도인은 경외감 회복하는 삶 실천”이란 말에서 "경외"는 신앙인에게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한 언어입니다.

    (고침: 3번 문항의 요 8:36은 요 18:36의 오기입니다)   삭제

    • 서동성 2018-10-05 14:30:08

      4. 또한 신앙 없는 인문학적이고 종교학적인 성서연구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성서는 그냥 고대문서”(존중, P. 243)이며 아울러 종교학자들과 같이 성서를 들여다보는 자들의 “자기중심적인 성서해석”을 염려하고 있습니다(존중, P.243).
      그에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분명하게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며,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이 둘은 서로 섞을 수 없다”입니다(존중, '그래서 존중입니다’, P. 70).   삭제

      • 서동성 2018-10-05 14:29:04

        3. 철저하게 황현숙 교수의 신학은 요8: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를 중시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상이 무던히도 강조하는 소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소통이 있어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 ‘나의 시간’을 찾아서 온전히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으로 비워두어야하겠습니다”(존중, 309)
        아울러 황교수께서는 인문학, 인간학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물존적 세계관을 벗어나야 함을 무던히도 강조합니다. “세상물건을 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쓰지 않는 자들처럼’ 사는”것이 그의 강조입니다.   삭제

        • 서동성 2018-10-05 14:27:50

          2.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존중이 무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철저히 이는 성서적인 관점 특히 요한서신의 경우와 같이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요일2:9-10)를 견지합니다(존중, ‘요한 서신들', P. 237-244).   삭제

          • 서동성 2018-10-05 14:27:00

            아래 댓글에 오해가 있는 듯하여 글을 올립니다.

            1. 황현숙 교수께서 말하는 “존중”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합니다.
            이 날의 강연과 책 “존중”은 이 점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존중이 최종적이며 그것에 의해서 인간에 대한 존중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황교수께서 말하는 존중은 “영적은사”로 인간들이 행하는 것과는 다름을 말하고 있습니다(존중, P. 5).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존중도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존중과 연결”됨을 말하고 있습니다(존중, P. 5).   삭제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