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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셨는지도 모른다하정완 목사, 꿈이있는교회
하정완 목사, 꿈이있는교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오늘 교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미 예수님의 길을 제대로 좇는 것을 상실한 것 같다. 바울이 말세에 주의해야 할 것들을 나열했었는데 이미 우리 앞에 그러한 것들이 그대로 이뤄진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딤후 3:1~3).

부끄럽게도 이같은 일들이 세상 말고 교회 안에서 그것도 목사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이같은 일을 벌이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더 후안무치해지고 더 세상적이 되어간다. 심지어 죄가 드러나도 그 죄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이상한 궤변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그곳에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적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딤전 6:4)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비우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케노시스를 보여주셨고 제자들에게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말씀 하셨지만 그렇게 살 마음이 없는 존재들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지도자들이 “다른 교훈”(딤전 6:3)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그토록 주의시켰던 가르침, 복음을 세상화시켜 귀에 듣기 좋고 부담스럽지 않은 것으로 바꾼 것이다. 우리의 물질적, 세속적 삶을 정당화시키는 가르침이다. 

삯꾼 목사들이 되어 이단들처럼 전한다.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강력한 카리스마로 위장한다. 이상한 가짜 은사들로 포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강화하고 정당화시키기 위해 동조 서클를 만들고 도그마를 만들고 계파를 만들어 자신을 옹호한다. 

그 깃발 아래로 모이게 한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딤전 6:5) 벌어진 상황이라고 바울은 설명했지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모르겠다.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처럼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그 사랑은 사라졌다. 기도의 깊이도 사라졌고 말씀 묵상도 없고 감각적이고 세상의 마케팅 같은 것들만 남아있다. 

이젠 정말 두렵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얼마나 드러내시고 얼마나 비참하게 하실지 두렵다. 그런데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없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들으면 정말 섬뜩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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