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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살아가는 젊은이의 눈으로 본 신석구 목사3·1운동 100주년기념 독후감 공모전 / 대상 권태근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감리회와 국민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신석구 목사 전기 ‘출이독립’(이덕주 교수 저, 신앙과지성사)에 대한 독후감 공모전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위원장 이병우 감독)가 주관으로 진행됐다. 독후감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권태근 성도(부산시온중앙교회)는 “신석구 목사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독립선언’이라는 한 사건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일평생 동일한 소망을 품고 한 길을 택했던 그의 올곧음에 있었다”며 그 올곧음은 십자가 신앙과 조국의 독립이었다고 표현했다. 기독교타임즈는 ‘출이독립’ 독후감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6주에 걸처 게재한다. <편집자주>

권태근 성도

바야흐로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흐름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흐름 속에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 즉 ‘진리’라는 말이나 혹은 ‘거룩’이란 단어는 일상 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청년 실업’,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으로 나타나듯 필자를 포함한 2-30대 젊은 세대는, 생각건대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혹은 버텨 내는 상황 속에 있는 것 같다.
2009년 필자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지 9년 가량 지났다. 대학생 시절 예수를 만나 학부 졸업 후 5년간 직장 생활을 해온 바,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성경 속 신앙의 영웅들의 삶은 필자의 삶과는 너무 멀리 있는 것 같고 당면한 현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간하기 힘든 날들을 지내왔다. 요컨대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text)을 ‘지금, 우리’의 상황(context)속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가 몇 년 동안 필자를 고민하게 한 화두였다.
영국의 역사가 E. H. Carr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바 있다. 올해 여름 알게 된 백 년 전 신석구 목사님의 이야기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필자의 머리 속에서 온몸으로 필자의 질문에 답하여 주었다. 특히 필자는 이 글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그의 생애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위에서 평생 가난한 삶을 살다 간 민족주의자.’ 놀랍게도 그의 삶은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단순한 구절에서 비치는 그의 충심과 기개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인생의 중대사에서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19세기 말 유학자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불과 16세가 되기 전 친부모를 모두 잃게 되는데, 비록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하진 못했으나 그의 대쪽 같은 선비정신은 아버지와 집안의 학풍 때문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원숙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10대 후반, 당시 사람들의 세태를 쫓아 그도 축첩과 재산 모으는 일에 열중하였던 적이 있다. 20대에 그는 자신의 이상을 펼 수 없는 가정 형편과 시대 상황에 좌절하여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빠진 적도 있었다.
30대 초반 그리스도를 처음 접하였을 때에도 그는 유학자로서의 자부심으로 기독교를 바라보았다. 그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하는 가장 좋은 길이 국민 각인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하였고 이는 곧 국권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여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베드로와 바울이 그랬듯, 몇 년 뒤 그 또한 ‘그가 하나님을 찾아갔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던 것’을 깨닫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본인의 죄악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천국에 소망을 품으면서 그는 진정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후 그는 목회자의 길에 소명을 품고 일평생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우리는 흔히 ‘신석구’에 대하여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독립선언에 참여하였던 1919년은 그의 나이 45살 때로, 이미 그의 인생은 과거의 방황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멀리 동행해 온 상태였다. 그의 삶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독립선언’이라는 한 사건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일평생 동일한 소망을 품고 한 길을 택했던 그의 올곧음이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5:7)’ 사도 바울이 언급하였듯 한 순간의 의협심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죽음을 불사하고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역사에서 간혹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생 전체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잔혹하리만큼 고독하고 어려운 일이다. 33인의 민족 대표 중에도 변절을 한 이가 몇 명 있다. 심지어 신석구를 전도자의 길을 가게 한 주역이었던 친구 정춘수마저 일제의 정치와 종교에 무릎을 꿇는 상황 속에서도 신석구는 하나님의 십자가와 조국의 독립을 진심으로 믿었다.
1945년, 그는 칠순을 넘은 노인으로 조국의 광복을 맞는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여 그가 목회하였던 교단은 북한 공산당의 탄압과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석구는 강대상에서 그리고 강대상을 떠나서도 진솔한 목회자였고, 청빈한 선비였으며, 타협할 줄 모르는 민족주의자였다. 1950년, 그의 나이 76세에 북한 정권에 의하여 숙청당할 때까지 그는 일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출이독립’을 읽으며 필자는 그의 인생이 순간적으로 타오르다 이내 꺼져서 재만 남는 횃불이 아닌, 은은한 빛과 열기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따스한 숯불처럼 느껴졌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해방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일평생 빛과 온기를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오늘날의 크리스천과 필자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신석구처럼 순전히 믿어야 한다. 즉, 구주의 피 묻은 십자가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 가치를 이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어떤 다른 것을 이룩하기 위함이 아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받아들인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구주의 순전한 사랑을 본받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그가 일평생 보여주던 삶의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일례로 신석구가 전도사 초년 시절 동역자와 뜻이 맞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를 미워하는 감정이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끼자 그는 지체없이 그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였다. 또 다른 예로 충청도에서 목회자로 사역할 때에 그는 사역 보고에서 그는 유명무실한 교인이나 주일학교 학생들을 원입인 수에 넣어 부풀리는 ‘관행’을 따라하기를 거부하고, 이름뿐인 교회와 교인들 수를 정리하며 제외했다. 양적 성장에 매달려 한 영혼을 돌보는데 소홀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오늘날 그처럼 행할 수 있는 크리스천이 몇 명이나 있을까? 지금도 대한민국의 많은 예배당에서 여느 전문 성악인 못지않은 찬양단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프로그램화된 양육 시스템이 사람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신석구만큼의 순전한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신석구의 시대처럼 예수를 모르는 이들이 ‘십자가’, ‘교회’를 보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거룩함을 떠올리는가? 우리 모두가 심각히 고민하여야 할 일이다.
둘째로 구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마땅히 이웃과 민족 그리고 국가를 위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앞서 서술하였듯 20세기 초반이라는 한반도 역사상 민족과 이념 간 대립이 가장 극심하였던 시대에 신석구는 결코 민족과 역사 앞에서 방관자로 지내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한민족의 독립과 온전한 광복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자신의 삶으로 그를 실천하였다. 그가 자서전에서 밝혔듯, 이는 하나님을 믿는 천국과 부활 신앙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2007년 12월, 기독교 장로 출신의 대통령을 선출한 바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를 지지하였고, 수많은 교회가 합심하여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여론을 모으고 투표를 독려하였다. 하지만 2018년인 오늘, 기독교인조차 그의 정치적 판단과 행보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정의를 닮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당선 전 그렇게 많았던 기독교인 지지자들 가운데 그의 임기 중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어떤 부분이 성경적이고 어떤 부분이 비성경적인지, 어떤 결정이 긍정적이고 어떤 결정은 비판해야 할지에 대하여 치열한 판단과 고민을 하는 이들은 매우 드물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정으로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선거, 시민 참여, 또는 여러 활동을 통하여 위정자들의 선택과 판단이 하나님의 뜻과 합한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판단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므로 ‘기도로 뽑은 통치자이니 그의 판단은 무엇이든 따라야 한다’는 말은 크리스천으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라 보기 힘들다.
신석구의 삶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일제의 권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난 권세라고 보지 않았다. 그에게 일제는 4천년 간 내려온 강토를 불법으로 침략한 외세였다. 그는 대한 독립에 몸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는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감옥에 나가서도 독립운동을 계속 하겠다’는 말이, ‘비록 내 때에 조선이 독립되지 않아도 독립의 씨앗을 심겠다’는 다짐이 가능했다. ‘종교인이 정치 참여하는 것이 옳은가?’, ‘교리상 영합하기 힘든 천도교, 불교 대표와 뜻을 같이 하는 것이 옳은가?’와 같은 질문들은 조국 독립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살아서 부귀 영화를 누리고 큰 명성을 떨치진 못했다. 하지만 신앙의 후배로서 우리가 본받고 배우고 싶은 쪽은 변절하여 일제에 협력하며 성경의 가르침 외에 눈을 두리번거리며 신사 참배에 머리를 조아린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십자가 아래에서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은 신석구와 같은 선배들이다.
하지만 그 선배들과 비교해본다면 21세기의 대한민국이 크리스천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기 호락호락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신석구에게 적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의 시대엔 일본제국주의와 공산당 파쇼 정권이라는 명백한 적이 있기에, 크리스천에게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나’ 판단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던 시대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크리스천에게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오늘날은 신자유주의-후기자본주의의 경제적 흐름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풍토 속에 ‘완전한 진리’란 세상에 없고, 본인의 감성과 생각, 그리고 욕망에 충실하라고 귀에 속삭이는 것 같은 시대다. 대중 매체에서 세상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그 교묘한 선언 아래에서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자동차의 크기, 집 평수, 월급의 숫자에 따라 대접받는 것도 다르고, 발언의 영향력 또한 다르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2,30대 청년들이 있다. 유사 이래 최고의 고학력-고스펙으로도 ‘직장에 취직도 힘들고, 취직을 하여도 본인의 전문성을 키우기 힘들며, 정년이 보장되기도 힘든’ 시대이다. 즉 이 시대의 청년들은 절대적으로 물질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닌, 본인의 능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서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따라서 조국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가 뚜렷하여 일평생 소신껏 살았던 신석구의 삶을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조금은 사려 깊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신석구의 일평생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지만, 그의 선택과 행보를 면면히 들여다보면 그가 엄격한 유학자 가문에서 교육받았기에 그리고 그의 판단을 늘 말없이 지지하고 수용하였던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점이 있다.
현재는 여성의 교육 및 권익 신장으로 부부가 같이 의논하여 가정의 대소사를 결정하며 부부가 같이 직장일과 집안일을 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렇게 맞벌이로 일을 하여도 사회 초년생들이 집 마련하기 매우 힘든, 일견 풍요롭지만 동시에 빈곤한 시대이다. 따라서 신석구를 본받되 그를 무조건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현시대라는 맥락(context)속에선 적절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본질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신석구 자체가 아니라 그가 평생 섬겼던 예수의 십자가이다. 우리는 신석구가 알았던 것만큼 예수를 알아야 한다. 그가 믿었던 것처럼 우리 내면의 상처와 사람 사이 갈등과 역사의 흐름 전부를 주관하시고, 섭리 가운데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언급하였듯 애초에 신석구의 여러 글과 행적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1919년 ‘민족대표 33인 사건’에서 그는 45세로 이미 인생의 원숙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아직 우리는 신석구의 40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직 우리는 18세의 신석구처럼 세상의 방탕함 속에 하나님을 잘 모르는 상태일 수도 있고, 30세의 신석구처럼 하나님을 믿어도 천국과 부활을 모른 채 자신의 편견 가운데 하나님을 가두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평생으로 보여주었듯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섬기면 하나님은 능히 그 신자를 들어 쓰셔서, 역사와 민족의 귀한 본보기로 쓰신다. 신석구가 그랬듯 필자 또한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기심을 믿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더욱 쉬운 일임을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9-30)’

권태근(부산시온중앙교회)

 

 

기독교타임즈  gam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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