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그녀는 파란 눈을 가진 조선인이었다[최효극 장편소설 「느티나무」 / 해드림출판사 ]여선교사 엘리자베스의 눈으로 본 조선 그리고 사람들

“코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오뚝하고, 눈은 가을하늘처럼 파랗고, 머리는 찰랑찰랑하는 짧은 금발이었다.” 저자는 등장인물 박홍수의 입을 빌어 소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이렇게 묘사했다. 바로 이어지는 단어는 ‘색목인’. “눈에 색이 있다”는 말로 조선인들이 서양인을 부르던 말이다.
이 책 「느티나무」는 파란눈의 색목인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선교사의 생애를 담은 소설이다.
독일 출신의 미국인인 엘리자베스는 조선 땅에 도착해 윌리엄 선교사 부부가 사역 중인 광주의 제중원에 부임한다.
엘리자베스는 노예나 다름없는 가마꾼들의 노동에 반대하고, 처녀를 내다파는 악습에 저항했다. 제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제중원 밖 나환자 촌에서의 의료활동도 열심을 다한다. 조선인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병으로 다리를 잃고 혼자 사는 고아의 의족을 위해, 그리고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자신을 거둬준 엄마의 친구 노름빚을 갚기 위해 작부로 팔려간 여자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몇의 선교사들이 봉사와 자신의 사생활을 엄격히 분리하는 이중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반면, 엘리자베스는 조선인의 집에서 조선인과 같은 옷을 입고 조선인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했듯 조선화되어갔다.
소설 속 또 한 명의 주인공 최종오는 나환자들을 위해 땅 1000평을 기부한 인물이다. 망나니로 살아오다가 순검이 된 최종오는 어느 날 일제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의병들의 탈옥을 돕고 이후 선교사들을 만나 제중원의 간호사가 된다.
미국인 간호부장 엘리자베스와 한국인 간호사 최종오는 서로에게 동지적 끌림을 느낀다. 엘리자베스는 최종오로부터 조선말을 배우고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른다. 두 사람을 조랑말을 타고 매주 함께 나병원을 다니며 함께 하지만,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오히려 사명감으로 승화하고야 만다.
조선인 최종오, 그리고 조선을 사랑한 엘리자베스는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조국을 향한 최종오의 사랑과 조선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의를 위해 일하는 엘리자베스의 행동은 무엇도 막을 수 없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읽는 이 소설 느티나무는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갑신정변 등 역사적인 사건, 나라를 빼앗기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안타까운 삶, 미신을 섬기는 조선인의 모습 등이 선교사들의 대화 속에서 등장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부각하기 위해 저자는 다른 선교사들을 봉사의 삶과 개인의 사생활을 분리하는 모습으로 그려내는데, 이들의 생활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소설은 중반부를 넘어 3·1운동을 다루고, 나환자들의 인권보장과 시설 확충을 요구하며 광주에서 경성까지 대행진을 감행하는 나환자들을 그려낸다. 한 사람의 희생과 앞장섬이 민중을, 사회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책의 결말은 꾀나 충격적이다. 엘리자베스도, 최종오도, 그리고 짧게 씌어진 한 문장으로 이 둘의 삶이 어떤 변화를 가지고 왔는지까지 말이다.
제목 「느티나무」는 엘리자베스에게 가장 좋았던 장소였다. 그녀는 삶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돌이켜보면 질풍노도 같은 세월이었어요. 오빠는 봉선리 지하에서 은밀하게 태극기를 인쇄하기도 하고, 시베리아를 떠돌다가 삼합회 사람들과 함께 독립군을 돕기도 했죠. 오빠, 그런데 이 순간 제 머릿속에 맴도는 게 뭔지 아시나요. 그건 이상하게도 느티나무에요. 봉선리 가는 길, 작은 구릉 위에 하늘 높이 솟은 그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 말이에요. 햇볕이 유난히 뜨겁던 그 초여름, 오빠와 함께 봉선리 가는 길에 그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던 기억이 새록새록 해요. 산들바람이 불면 이파리들이 정신없이 손을 흔들어 대는데 마치 수많은 작은 종들이 동시에 마구 울려 퍼지는 것 같았어요. 지금 전 신비스러운 그 종소리를 듣고 있어요.”

김혜은 기자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혜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