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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종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네전태규 목사

금년은 나의 아버지 전병권 목사님께서 돌아가진 지 19주년이 되는 해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내게도 아버지는 하나님 다음으로 귀하다.
아버지께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투병하실 때 나는 아버지가 2000년을 맞이한 뒤 하늘나라에 가시길 그토록 원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1999년 11월 30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그때 내가 다짐한 것이 있다. 하나는 경제적인 일로 원고만 모아두고 책 한권 출간하지 못하신 아버지를 위해 1주기 때 추모 집을 출간 한다는 것이었다. 또 아버지의 기일에는 추모 글 한편씩을 써서 신문에 기고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차가 신촌 연세대 정문을 통과할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혼잣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종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네!”라고 말씀하셨는데 운전하면서 들은 그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히 기억난다.
평생 어려운 농촌 목회를 하셨기에 자녀로서 아버지를 기억할 때면 아픈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도 위로받는 것은, 아버지께서는 신앙으로 환경을 초월하시면서 행복한 목회 생활을 하시다 가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짐한대로 1주기 때 추모 집을 출간하였고 19년 동안 아버지 기일에는 추모 글 한편씩을 써 왔다. 그런데 요즘에는 고민이 생겼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행적들이 흐려져 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 10월 9일 아버지께서 목회하셨던 논산 우곤교회 창립100주년 감사예배에 초청을 받고 생존해 계신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이 참석하였다. 아버지는 7대 담임자로 1981년 6월 28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 짧은 목회를 하셨다.
그러나 후임 호정길 목사는 30년을 목회하시고 그 교회서 은퇴를 하셨다. 나는 호 목사님에게 존경스럽다고 말씀드리니, 그는 “아닙니다. 전병권 목사님이 교인들을 신앙으로 잘 가르쳐 놓으셔서 나는 편하게 목회하였다”며 그 공을 아버지께 돌리셨다.
100주년 기념집을 들여다보니 아버지가 목회 하던 시절인 1981년 12월 30일 당회 회의록 기타 사무처리에 결의된 내용이 있었다.
1. 관혼상재에 대하여
목사님께서 주일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장례식이나 결혼식 주례는 하지 않는 것으로 제의하니 만장일치로 가결이 됨.
2.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실 분은 성의껏 감사헌금을 바치고 만약 믿지 않는 사람이 예를 지낼 때는 믿을 것을 약속하고 예를 치룰 것을 가결함. 당회서기 주상덕 권사 이렇게 기록하였다.
또한 얼마전 나는 남양 영광교회(담임 김요섭 목사)에서 10월 14-17일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과거 아버지께서 남양교회에서 목회하실 때 과수원을 경영하는 이순희 권사께서 새벽이면 복숭아를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와 사택 문 앞에 놓고 가면 가난했던 시절 온 가족이 일주일간 과일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는 이때를 생각하며 부흥회에 가면 늘 기억에 남는 성도가 되라고 외쳐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권사님의 외손자가 바로 목사님의 사위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섬겨온 가정의 자녀들이 잘되고 복 받고 사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내가 속한 동작지방은 지난 11월12-16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교역자부부수련회를 진행했다. 우리를 안내한 유재철 목사께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 남겨준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목사 할 것입니다. 특별히 감리교회 목사가 되었다는 것에 긍지를 갖습니다. 생전에 나의 아버님이 늘 이런 말씀을 해오셨다. 그 어려운 베트남에서 사역하는 후배 목사가 이런 말을  하니 더욱 감개무량하다.
나 또한 주님의 도우심으로 행복한 이 길을 끝까지 잘 달려가고 싶다.
아버지! 주님 품안에서 편히 쉬세요. 내년에 다시 새로운 소식 올리겠습니다.

전태규 목사(서광교회)

기독교타임즈  gam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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