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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 하고, 주께 하듯 하라”자랑스런감리교평신도상 세 번째 주인공 채의숭 장로
세계에 100개 교회 짓고 또 다시 100개 건축 도전 중
자랑스런감리교평신도상 세번째 주인공 채의숭 장로.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 했으나 결국 성전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 완성되었다. 목회자들 역시 교회를 담임해 목회를 하면서, 성전을 짓는 것이 인간의 계획만으로는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100번 넘게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채의숭 장로(화양교회)다.
채의숭 장로를 떠올리면 세상은 그를 대의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설명하겠지만, 믿음을 지닌 이들은 그의 이름을 들을 때 ‘주께 하듯 하라’와 ‘주와 함께 하라’는 문장을 떠올린다. 그가 써낸 책의 제목이자 그의 삶을 대표하는 문장이다.

주님과의 세 가지 약속

올해 81세가 된 채의숭 장로는 충청남도 태안, 학교조차 없는 산골에서 6남매의 맏이로 자라났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싶어했던 그의 아버지는 여덟식구를 끌고 집을 나섰고, 이틀을 헤매고 난 뒤 더 이상 해볼 도리가 없자 무작정 지팡이를 던지고는 그 끝을 따라 걸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대천이었다.

“대천에 도착해 집을 샀는데, 바로 길 건너에 대천감리교회가 있었습니다. 해방도 훨씬 전이었으니 동네에 딱 하나밖에 없는 교회였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니 중학교가 생기고 또 졸업할 때쯤 대천농고가 생겨나면서 그의 학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채 장로는 자신의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뀐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주일말씀을 지금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바로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도 간신히 다녔지요. 그래서인지 시골에서 누구나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나 역시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을 가지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집에 가는 길에 계속 떠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던 학생 채의숭이었다. 그렇게 머릿속에는 꿈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잡았고, 그의 발걸음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공동묘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기도할 때 채 장로는 그때까지 한 번도 듣지 못한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이 명확하게 들렸다고 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을 듣고 채 장로는 세 가지를 서원했는데 첫째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는 꿈, 둘째 대한민국의 제일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꿈을 기도했다. 그리고 셋째로 두 가지 꿈이 이루어지면 복음을 전하면 손과 발이 잘려나가는 지역을 찾아가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겠다고 서원을 하게 된다.

주님의 이끄심 따라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지만 채의숭 장로의 현실은 시골 가난한 집의 장남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을 딱 한번만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쌈짓돈을 500원을 받아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친구를 만나 하룻밤을 머물렀고, 친구의 권유에 따라 서울에서 3개월 동안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당시에는 장학생을 선발하는 시험이 따로 있었는데 장학금을 많이 주기로 유명했던 조선대와 숭실대, 건국대를 모두 지원했는데 전부 합격이 됐다.

“건국대에 입학했는데 입학식에 가보니 제가 전체 수석을 했다면서 4년 등록금 면제에 매달 12000원의 장학금이 따로 나왔습니다. 그 때 하숙비가 9000원이었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장학금은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입학식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오는 길. 버스에서 보인 십자가를 따라 무작정 내린 곳은 그가 평생토록 섬겨온 화양교회였다. 24인용 군대천막을 설치하고 예배를 드리던 화양교회에 19살 청년의 모습으로 처음 가 지금 81세의 노인이 되었으니 햇수로 63년간 화양교회는 채 장로의 안식처가 되었다. 젊은 대학생 청년으로 봉사하면서 교회학교도 만들고, 청년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됐고, 성가대를 만들어서는 초대 성가대장도 맡으면서 화양교회와 함께 그는 신앙을 키워갔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졸업을 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채 장로는 공채시험을 통해 삼성그룹 직원이 된다. 최소 8년이 돼야 될 수 있는 과장을 2년 8개월 만에 진급을 해낼만큼 그는 늘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냈다. 대우그룹으로 이직해서는 젊은 나이에 해외사업본부장을 맡았고, 41세에는 대우 아메리카 사장이 됐다.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100개의 교회를 건축했다. 채 장로는 "100살이 될 때까지 100개의 교회를 더 세우겠다는 서약"을 하게된다고 전했다.

100개의 교회, 그리고 또 다시 시작

서른여섯 나이에 장로의 직분을 받아 교회에서도 주요하게 직임을 다하고, 회사에서도 중요한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채 장로는 하나님께 서원한 100개 교회의 건축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가장 먼저 된 고민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인으로 있으면서 마음대로 선교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았고, 중직을 맡은 임원이긴 했으나 교회를 세워나갈 돈을 마련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교회를 세우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해 그는 회사를 사직하고 ‘대의’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면서, 12명의 제자와 같은 수인 12개의 회사를 세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렇게 회사를 세우고 75세까지 12개의 회사를 만들고 그룹을 운영하면서 30년간 채 장로는 100개의 교회를 설립했다.

사람들은 그가 12개 회사를 지닌 그룹의 회장임을 부러워하며 대단하다고 칭송하지만, 정작 채 장로는 그룹회장은 선교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선교가 막혀있는 지역에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비자를 내는 것조차 힘들지만, 기업 회장으로서는 세계의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환영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채 장로는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100개의 교회를 건축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일이 끝났다고 여길 때 즈음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의 입을 통해 “100개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한 것은 나지만 이루신 것을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면서 100살이 될 때까지 100개의 교회를 더 세우겠다는 서약을 하게된다. 이후 자신이 가진 소유를 팔아 재단 ‘대의미션’을 설립하고 현재 교회건축을 또 다시 진행 중에 있다.

이렇게 복음이 전해지기 어려운 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면서 그에게 생긴 고민은 감리교회 장로로서 복음의 현장에 섰을 때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거나 성찬을 할 수 없다는 한계였다. 감신대 규정상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하기가 어려워 장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어렵게 복음을 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생소원이 세례를 받는 것인데 장로인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에 직접 목사안수를 받고 그들을 찾아가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끝날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한없는 축복을 받았다고 했다. 산골에서 태어난 촌사람이 기업의 회장이 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장로, 목사가 되었으며 국가조찬기도회 9대 회장을 지내며 나라를 위해 기도도 해봤다.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받은 이유에 대해 그는 어머니의 교훈 세 가지를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첫째 주일예배를 성수하고, 둘째 담임목사님 말씀에 순종했으며, 셋째 십일조를 강조하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회사가 어려울 때도 십의삼조 이하의 헌금을 드린 적이 없다고 했다.

채의숭 장로를 중간으로 위로 할아버지까지 전도하고 손자손녀들까지 합쳐 지금은 560명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명가가 됐다.

나이가 들어가고 사업에 선교까지 일이 많아지면서 고혈압과 당뇨, 심장에 이상이 왔고, 갑상선 암도 찾아왔다. 또 중풍에 걸려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는 시절도 있었다. 그런 채 장로는 81세인 지금 그 누구보다 건강하다며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국가조찬기도회장이 되면서부터는 해외출장이 아닌 이상 한 번도 빠짐없이 새벽과 저녁에 청와대 뒤 북한산에 올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호흡하나 가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세계의 곳곳에서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를 세우고도 가 보지 못한 곳은 파푸아뉴기니의 식인종 마을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동안 복음을 전하기만해도 어려움을 겪는 곳이 주 선교지였으나, 이제는 또 다시 복음이 들어가야 할 미국과 유럽을 위해서도 전도하고 있다는 채 장로.

“그 동안 많은 상을 받았지만 76년간 감리교인으로 지내면서 ‘자랑스런감리교평신도상’을 받는 것은 어린 나이에 주님과 약속하고 이를 지켜낸 것을 인정받는 것 같아 너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채 장로는 그러나 지난 76년을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리겠다며 “성경에서 가장 선교를 많이 한 사람은 바울인데, 저는 바울의 발뒷꿈치조차 따라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써주시려고 제 몸을 깨끗하게 해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쓰시는 한 더욱 열심히 달리며 선교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김혜은 기자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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