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250년간의 박해로 이어져 순교 역사 간직한 땅배재고등학교 장운석 교목실장/중등교목회장

학원선교의 새 비젼을 품게한 나가사키 성지순례

본부 교육국(노덕호 총무직무대리) 학원선교회(회장 김종훈 목사), 서울연회(원성웅 감독)의 후원으로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등교목회(회장 장운석 목사/배재고 교목실장) 회원교목과 가족 31명은 2019년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에 걸쳐 ‘일본의 로마’로 불리웠던 나가사키현 일대를 순례하였다.

학원선교의 일선에 수고하고 있는 교목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학생 및 학급수 감축으로 인해 교목과 교사 혹은 담임교사의 역할까지 감당하며 학원목회자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는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목들의 학원선교 새비전을 모색하고 영적 성장을 회복할 기회로 일본 기독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질그릇 속의 보물같은 규슈와 나가사키 일대 순례를 계획하고 지난 1년동안 준비하였다.

일본의 기독교는 기리시탄(吉利支丹 또는 切支丹)의 역사다. 1549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에 의해 일본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기리시탄’이란 기독교도(Christian)를 의미하는 일본의 역사적 용어다. 에도시대인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제(司祭) 추방령을 내리면서부터 도요토미 정권과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금교령(禁敎令) 발령 이후 무자비한 박해와 탄압으로 기독교 전파가 엄격히 통제된 시기에 활동한 기독교교인을 뜻한다.

1597년 최초의 공식 박해로 기록된 소위 나가사키 ‘26성인(聖人) 순교사건’ 이후 250년간 지속된 막부의 가혹한 박해로 목숨을 잃은 유명·무명의 희생자를 모두 합하면 순교자가 4만~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첫날 후쿠오카 공항으로 입국한 순례단은 버스편으로 구마모토현 나가스항에서 훼리로 시마바라로 이동하였다. 시마바라는 조용한 어촌마을에 불과하지만 에도시대에 인 1637년 금교령에 따른 영주의 극심한 종교 박해와 세금 착취에 항거하여 일어난 시마바라의 난으로 불리운 봉기로 기독교인 대부분이 순교를 당하는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남겨둔 채 자른 후 바다에 수장당한 최연소 순교자인 이그나치오 우치보리를 비롯한 4만명에 이르는 순교자들을 기리는 ‘시마바라 교회’를 시작으로 순례에 나섰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참아가며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운젠 지옥천, 십자가 언덕을 오를 때는 숨쉴 수 조차 없는 뜨거운 유황천의 고문에 신음했던 신자들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둘째날, 나가사키로 이동한 순례단은 잠복 기리시탄을 발견한 장소에 세워진 일본 최고(最古) 가톨릭 건축물 오우라 성당[国宝 大浦天主堂,정식 명칭은 ‘일본 26 성인 순교성당’]을 방문했다. 1597년 나가사키에서 순교한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박해가 끝난 직후 1864년 나가사키에 도착한 파리외방전교회의 프티장(B. Petitjean) 신부에 으해 세워진 오우라 교회를 방문하였다.

이어 1945년 원폭으로 파괴된 원죄없는 성모’에게 드려지는 헌당식이 행해진 우라카미 교회를 방문한 순례단은 8월 9일 원폭으로 성모승천대축일을 준비하던 신자 24명과 사제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마을 주민 1만2000명 가운데 8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라카미 교회에서 찬송과 기도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이들을 애도하였다.

니시자카의 복된 언덕이라 불리우는 곳에 세워진 26성인 기념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기독교 금지령에 따라 스페인신부 6명 일본인 신자 20명이 교토로부터 나가사키까지 2천리가 넘는 길을 한 달동안 끌려와 처형당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기념비에는 ‘중간에 키가 작은 소년들은 처형당할 때 나이가 12-14살 이었다’고 쓰여있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셋째날, 나가사키시에서 북서쪽으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넘어가면 푸른바다가 보이는 외해(外海)라고 표기하는 소토메에 이르렀다. 가톨릭 작가 엔도우 슈사쿠의 작품 '침묵'의 배경지이기도 한 소토메는 박해이전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으로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척박한 땅을 선택했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금교령(1614년) 이후 250년 동안 기나긴 잠복 기간을 비밀교회를 만들어 그들만의 신앙을 유지했던 '가쿠레 기리스탄'(숨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있던 곳에 세워진 소박한 시츠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550년 포루투갈 배에 의해 개항 된 곳이며 박해를 피해 산간 오지나 섬으로 피해 숨어살던 가쿠레 기리시탄(潛伏切支丹) 시대에 이곳 신자들이 모여 숨어살던 히라도로 이동하였다. 조개껍질을 섞어 벽돌을 만들어 타비라 성당과 1549년~1551년 일본에서 선교를 했고 히라도에는 세 번이나 방문 한 것을 기념하여 자비에르 상을 세우고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신부를 기념한 '성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기념교회'을 방문했다.

넷째날, 일본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 선교의 거점으로 삼은 히라도. 히라도에서 다시 30분 정도 바다와 산길을 가면 나가사키현 귀퉁이에 붙은 마지막 섬인 이키츠키(生月) 기리시탄 자료관을 찾았다. 16세기 중엽 신자 수가 1300명에 달했던 이키츠키는 유럽 성가를 부르는 일본 최초의 서양음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한 이키츠키는 관리직을 버리고 신앙을 지지하고 세례의 길로 인도한 니시 겐카 가족의 순교지이며 오랫동안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 있던 잠복 기리시탄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순례단은 까밀로 콘스타츠오 신부 순교탑에 모였다. 예수회 신부로 1605년 일본에 입국하여 선교를 하다가 1614년 마카오로 추방, 1621년 재입국하여 히라도 이키쯔키에서 선교를 하다가 고토의 최북단 우쿠섬에서 체포되어 1622년 9월 15일 히라도의 타비라에서 화형으로 순교하는 순간에도 각국어로 설교하고 성가를 불렀다고 전하는 순교기념탑 앞에서 순례단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하은’을 찬송하였다. 이어 김종훈 목사로부터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는 말씀을 순교로 보여준 나가사키 순교 성지를 통해 어려움에 처함 한국교회와 학원선교 현장에 있는 교목들이 새로운 신앙고백으로 복음의 일꾼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권면을 받고 감동과 눈물과 기도로 드거웠던 가슴을 부여안고 아쉬움의 귀국길에 올랐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