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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처신1019호 사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장횡거張橫渠는 이미 그 시절에 지동설을 논한 것으로 알려진 당대 최고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였다. 그의 학문이 높고 강의가 명쾌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많은 이들이 찾아 배움을 청했다.

하루는 정씨 성을 가진 젊은 학자 둘이 그를 찾아와 유교 경전인 주역을 논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장횡거는 자신이 강의할 때 깔고 앉던 호랑이 모피를 거두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난 날 강의한 것은 도를 혼란하게 한 것이니라. 두 정씨가 근래에 왔는데 도를 밝게 알고 있어 내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그대들은 그들을 스승으로 삼을만하다.” 그는 이 말을 남기고 곧장 고향인 섬서성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보다 수 백년이나 앞서 지동설을 논했다는 당대 최고의 학자가 한참 후배격인 젊은 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준 뒤  떠났다는 일화는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져 학자들의 귀감이 됐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는 이 일화를 떠올리며 “호피를 걷어내는 일에 인색하지 말라”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한다. 여기서 나온 고사가 ‘횡거철피橫渠撤皮’ 다.

“물러날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이 고사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깨워준다.

이형기 시인은 유명한 시 ‘낙화’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며 노래했고, 그 시구가 긴 여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근 감리회 안에는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이들, 구차한 이유와 변명으로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미련을 보이다 끝내 망신을 당하는 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일이 일신의 패착으로 끝난다면 그저 웃고 말 일인데, 궤변의 논리와 엉뚱한 처신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상당한 후유증을 남겨 주변까지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언행에 각별히 주의하고 시의적절한 처신을 해야 한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주역周易에서 “언행言行은 군자가 이로써 천지를 움직이는 바니, 감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언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있다. 

지도자의 중책을 맡은 이들 중에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논리와 조변석개朝變夕改의 처신으로 감리교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자신의 허물을 가리기 위해 거짓을 꾸며내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태도까지 보이는 이들이 있어 말문조차 막히게 한다.

오늘의 감리교회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배려와 존중은커녕 편가름과 끌어내리기에 몰두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 분명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소위 지도자들의 게걸음 행보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공공의 이익이나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생각이나 입장을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이 비난받는 것처럼 정파의 입장, 혹은 자신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말을 바꾸거나 행동을 가볍게 하는 것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될 처신이다. 

책임지지 못할 자리에 앉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 일을 그르친 책임은 남 탓으로 돌리며 자리에만 연연하는 이들, 자기 기분에만 취해 공적인 책임은 뒤로하고 사퇴와 번복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들, 자기 몸에 묻은 것은 무엇인지 돌아볼 생각 없이 그저 상대방의 몸에는 겨가 묻었다고 힐난하며 분위기를 망치는 이들, 궤변과 모사謀事로 얻은 잠시 잠깐의 승리감에 도취해 결국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는 이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부끄러운 지도자들의 모습이 사라져야 감리교회는 진정한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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