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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세월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박현식 목사(새순교회)

첫 번째 이야기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 프랭클린이 서점을 경영하고 있을 때였다. 어떤 신사가 책방에 들어와 책 한 권을 가리키며 “이 책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었다. 프랭클린은 “1달러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조금 깎아주세요” “안 됩니다” “그러면 얼마면 되겠소?” “1달러 25센트를 주십시오.” “뭐라고요? 농담하지 마시고, 정말 얼마면 되겠소?” “지금은 1달러 50센트에 드리지요” 이 신사는 깜짝 놀라며 “아니, 지금 사람을 놀리는 겁니까? 세상에 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책값이 비싸지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러자 프랭클린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저에게 있어서 시간은 돈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책값은 올라갑니다. 저는 지금 선생님께 1달러 50센트에 이 책을 파는 것이 처음 정가로 파는 것보다 손해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과 쓸데없는 실랑이를 하느라고 금보다도 귀한 저의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신사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프랭클린에게 1달러 50센트를 주고 그 책을 사갔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시골에 살다가 도시 지역의 학교로 떠나는 소년에게 어머니가 시계 하나를 내놓았다. 그것은 오래되어 빛은 조금 바랬지만 초침과 분침, 시침이 각각 금, 은, 동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시계였다.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이 시계는 시침이 금, 분침이 은, 초침이 동이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시계를 볼 때 시침을 제일 먼저 보게 되니까요” 소년의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들아, 사람들은 대부분 너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분과 시가 있을 수 있겠니. 분과 시는 결국 초가 모여 만들어진 결과란다. 초를 허비하는 것은 곧 황금을 잃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 그러니 초침이 가는 길이야말로 황금길이야. 세상의 변화는 초침에 맞추어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네 마음속에 명심하렴. 이것은 네가 초침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너희 아버지께서 만드신 거니까 말이다. 아들아. 다시 이야기한다. 아버지께서 이 시계를 만드신 이유를 절대로 잊지 말아라” 소년은 그 시계를 만지작거리면서 아버지의 온기를 느꼈다. 그리고 초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시간은 인생을 구성하는 재료니까…. 똑같이 출발했는데 세월이 지난 뒤에 보면 어떤 사람은 앞서가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뒤쳐져 있다. 이 두 사람의 거리는 좁힐 수 없이 멀어져 버렸다. 그 이유는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였는가, 허송세월 하였는가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세월은 우리를 무작정 기다려주지 않는다. 장 폴 사르트르는 말하기를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이다.” 어느 누구도 결코 자기 자신의 죽음을 체험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상황이다. 그렇다.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끝이 있다. 바로 심판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9장 27절)

우리는 결코 세월을 낭비하면서 살면 안 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의미 있게, 가치 있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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