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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학 참회록정진식 목사(음악박사, 감리교교향악단 대표)

1982년에 나는 감신에 입학했다. 당시 선택과목으로 ‘찬송가학’이 있었는데, 다른 과목과 겹쳐서 듣지 못하고 대신 교재를 구입해 읽었다. 나는 실천신학이나 예배의 관점에서 목회현장에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찬송가에 대한 종합적인 안내를 기대했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찬송가의 역사를 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책을 덮고 ‘찬송가 해설’ 책을 새로 구해 읽어보니, 찬송가 작사/작곡자, 배경, 간증 등을 나열하는 정도였다. ‘찬송가학’과 ‘찬송가 해설’ 중간 정도의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두 책을 시간날 때마다 번갈아 읽곤 했다.

2010년에 미국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고, 찬송가학(Hymnology)을 강의할 기회가 왔다. 28년 전에 느꼈던 아쉬움을 기억하며, ‘찬송가학’과 ‘찬송가 해설’ 중간 정도의 강의가 되도록 나름대로 준비했다. 옛날의 아쉬움은 해결이 되었는데, 마치 습관처럼 지나쳤던 강의의 한 부분에서 한 학기 내내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멈추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찬송가학’에서 성경의 찬송을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보통 시편과 시편 이외의 구약 찬송 몇편 그리고 신약의 찬송 몇편 정도로 요약하여 넘어가곤 했다. 2015년 봄학기였다. 왠지 모르게 성경에 나온 ‘찬송’을 제대로 찾아보고 싶어졌다. 찬송과 관련된 주요 단어를 검색하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성경구절이 쏟아졌다. 관련구절을 컴퓨터 검색결과에서 카피하려다가, 성경구절을 하나 하나 찾아 직접 써보고 싶어졌다. 천천히 쓰면서 묵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매주 내가 옮겨 쓴 만큼 학생들과 함께 본문을 직접 찾아 읽으며 묵상했다. 옮겨 쓴 말씀을 나는 성경시대 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창조시대에 아담과 하와는 어떤 찬송을 불렀을까? 족장시대에는 어떤 찬송을 불렀을까? 광야에서는? 포로시대에는? 이런 질문을 하며 성경구절을 옮겨 적는 가운데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한 학기 내내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찬송 관련 성경구절을 함께 찾아 읽으며 한 학기를 마무리했다.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자만하던 시점에서 침체의 시간이 찾아왔다. 어느날 하나님의 초월적 신비경험을 표현하기에는 언어가 너무 초라하다는 글을 읽다가, 갑자기 초라해진 나를 발견했다. 전도서의 탄식처럼 ‘헛되고 헛되다’는 허무가 엄습했다. 도무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것 같지 않았다. 허무와 침체의 터널 끝에서 시작한 봄학기였다.

하나님은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셨다. 평소 지나쳤던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악기로 주님을 찬양하라” (Praise the LORD with Musical Instruments)는 다윗의 규례를 옮겨 쓰면서 나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찬송가학’ 성경구절을 옮겨 적으며 설교나 강의 준비에 급급하여 성경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때 그때 필요한 성경말씀 위주로 묵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왜 이런 시간을 진작에 갖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웠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찬송가학’ 관련 성경구절을 옮겨 적는 가운데, 헨델의 메시야 가사의 원문을 만났고, 하이든의 천지창조 가사의 원형을 만났다. 찰스 웨슬리 찬송시의 원천에서 샘물을 마시는 듯 했다. 나에게는 뜨거운 한 학기였다. ‘찬송가학’을 마치 참회록처럼 강의하던 그 뜨거웠던 봄학기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찰스 웨슬리의 찬송시 ‘만 입이 내게 있으면’이나 찰스 웨슬리의 손자(Samuel Sebastian Wesley)가 작곡한 ‘교회의 참된 터는 우리 주 예수라’와 같은 찬송을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처럼 만들어 봉헌하고 싶은 열망도 다시 타올랐다. ‘찬송가학’의 감리교유산을 이어가고 싶은 이 작은 나의 꿈을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감리교교향악단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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