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설교
카리스마의 계승홍성국 목사(평촌교회)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15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16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17 <민수기 27:15-17>

카리스마(, Charisma)라는 말은 헬라어인데 신약성경, 특히 사도바울이 성령의 은사를 말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는데 이 말은 “하나님에게 부여받은 신적인 선물, 은총, 특별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독일의 사회학자 Max Weber(1864-1920)는 「종교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이 단어를 사회적인 용어로 재해석해서 ‘카리스마의 일상화’(routinizing of Charisma)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서 Weber는 ‘Charisma’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사람’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카리스마는 이제 특별한 권위, 지배력, 지도력들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카리스마를 가진 개인과 그것을 추종하는 추종자라는 관계가 형성되고 거기에는 카리스마적 권위, 지배 그리고 지도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추종자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사후에 그 이상과 운동을 반복화와 일상화(Routinizing)를 통해서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합니다. 1920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Charisma’라는 용어는 사회학뿐 아니라 신문매체, 종교, 정치, 경제 모든 영역으로 무섭게 퍼져나갔습니다. 강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Charisma’라 부르는데서 시작하여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보통사람과 다르면 그들을 ‘Charisma’라고 부르는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다윗과 같은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뽑아 낸 영웅이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같은 제사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내산에서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죽지 아니한 그리고 십계명과, 약자보호법, 성막법과 제사법을 받은 계시자였습니다. 수시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돌을 들어 자신을 치려한 민족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사막에서 진멸하게 된 그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용서를 간청했던 중보자였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와 같은 군사령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홍해를 건넌 후 부터 요단강 동쪽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수없이 치룬 이방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략가였습니다. 모세는 이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진행 속에 말씀하시고 또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읽고, 말씀을 선포하고 회개를 호소한 선포자였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Max Weber가 말한 ‘Charisma’중의 ‘Charisma’였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경본문 <민수기 27:12-23>을 보면, 비정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마칠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덧 광야생활을 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저들이 요단 강 동편 모압 평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바림 산’에 오르게 하셨고, 저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난 날 ‘므리바’ 물 사건 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지도자의 역할을 끝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의 삶도 그만 끝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말씀일까요? 모세는 지난 40년 오로지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한다니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그래서 <신명기 3:24-25>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끝내 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사역은 거기까지라고 못 박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40년 동안 힘겹게 쌓아올린 카리스마가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 앞에 모세가 선 것입니다. 카리스마의 계승이 거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실패한 카리스마로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Max Weber의 말대로 카리스마의 일상화가 끊기는 비극적인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세는 카리스마의 일상화가 실패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저주받은 듯한 Charisma의 종말, 그 다음을 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거부된 자리!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된 죽음의 자리에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마지막 ‘청원기도’ 하나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기도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주목해야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소멸되는 이 자리에서 모세는 40년 동안 수시로 자기를 괴롭히고, 툭하면 돌을 들어 치려 달려들었던 배역한 민족!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여호와의 회중’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무리’라는 뜻 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민27:17)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자신이 받는 저주보다 하나님의 회중인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회중인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가 하나님과 자기 자신의 관계보다 우선한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관계의 ‘선線’ 옆으로 살짝 물러섰습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생명과 운명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륜經綸의 손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을 부르신 분도 하나님, 자신에게 카리스마를 주신분도 하나님, 이제 카리스마를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 이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으로 모세는 만족하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위임하십니다. 이 말은 모세가 선택해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여호수아에게 계승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국감리교회는 여기서 다시 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 보다는 주님의 교회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리스마는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카리스마가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주에서 중요한 것이 바통 터치입니다. 이 바통 터치를 위해 모세가 드렸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민 27:16-17)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