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송영범의 성서와 인문학
「The Winter’s Tale」 겨울 이야기 부활, 완전한 사랑③송영범 목사(갈릴리교회)

무엇을 의심하는가

「겨울이야기」는 레온테스의 의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6년이란 참회의 시간을 통해 의심을 지우는 나날을 보냅니다. 사실 ‘의심’은 시민의 기본 소양입니다. 굳이 17c 데카르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유럽의 정신이 되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의심은 근대를 열어젖힌 역군이기도 했습니다. 무지에 깨어남을 주고, 어둠에 빛을 주는 힘이 바로 의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 역시 문화와 사회, 종교적인 측면에서 의심을 커다란 중심점으로 삼았습니다. 다시 말해 의심은 17-18c 계몽주의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겨울이야기」에서는 ‘의심’이 의심 받습니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맹목적인 의심은 시간에 의해 무장 해제되고 맙니다. 과학은 의심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과학 역시 새로운 의심에 의해 일격을 당하게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드러납니다.

결국 ‘무엇을 의심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의심하는 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존재론적인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진실의 권위는 의심하는 개인이 아니라 의심의 대상에 있습니다. 무엇을 의심하는가, 그 의문의 층위들에 대한 통렬한 탐사만이 진실에 이르게 만듭니다. 레온테스는 의심하는 일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의심의 권위를 자기 감정, 자기 경험, 자기 확신, 그리고 왕이라는 자기권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내 기준을 가지고 남을 재단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이렇듯 위험요소가 다분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사람과 사람 속 어딘가를 헤매며 살아가는 인간인 우리에게 ‘뜨거운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따위 의심이나 계속하려거든 지옥에나 가서 썩어버려라! 자네는 내가 그토록 판단이 흐리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는가? … (중략)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는가? 내 핏줄임에 분명한,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나의 왕자에게까지 불명예를 안길 사람으로 보이는가? 충분한 이유도 없이? 내가 그럴 사람처럼 보이는가? 내가 어떻게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레온테스의 의심은 폐쇄적인 자기 확신에서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포기되지 않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심은 레온테스가 보인 것과는 결과가 확연히 다릅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인 마틴 슐레스케의 책 「가문비나무의 노래」를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의심은 전에는 견고함이었으나 이제는 완고함이 되어 버린 것을 흔듭니다. 전에는 확신이었으나 지금은 소유가 되어 버린 것을 흔듭니다. 전에는 명확함이었으나 지금은 고집이 되어 버린 것을 흔듭니다. 전에는 진리였으나 지금은 교리가 되어 버린 것을 흔듭니다. 전에는 기도였으나 지금은 뜻 없는 주절거림이 되어 버린 것을 흔듭니다. 전에는 재능이었으나 지금은 권력이 되어 버린 것을 흔들고, 전에는 복이었으나 지금은 자랑이 되어 버린 것을 흔들고, 전에는 헌신이었으나 지금은 희생이 되어 버린 것을 흔듭니다. 한마디로 의심은, 전에는 사랑이 있었으나 이제는 사랑이 없어져 버린 것들을 흔듭니다. 그리하여 흔들리지 않은 것들만 남게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흔들림의 눈물을 통과한 것들입니다. 흔들림의 눈물은 소중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젊게 합니다.‘창조적인 불안’

믿음으로 가는 의심의 기본은 증폭이 아니라 감소입니다. 레온테스의 의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가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심은 대상 앞에서 한낱 무無일 뿐인 존재의 연약함을 보는 일입니다. 의심의 터널을 통과할 때 비로소 믿음의 문이 보입니다.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에게 우주는 하나의 경이입니다. 경이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대상을 보다 잘 알려는 합리적인 의심이 요구됩니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