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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형성 그리고 영성의 열매 정의김수천 교수(협성대 기독교영성학)

필자가 유학할 당시 미국의 동부 지역에서 목회하는 감리교회 목회자들의 스터디 모임으로부터 메일을 하나 받은 적이 있다. “그 동안 영성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 영성을 공부해 왔는데 이제는 목회자들의 영성에 대한 공부도 식상한 듯 합니다.” 당시는 90년대 후반이었다. 왜 당시에 벌써 영성에 대한 관심이 식상한 듯 했을까?

그것은 개신교 안에서의 영성에 대한 관심사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지하듯이 개신교 안에서 영성에 대한 본격적 관심은 20세기의 4반세기에 북미에서 시작되었다. 말씀 중심의 종교개혁 전통과 성령운동 중심의 개신교 전통에 치중하는 목회를 해 온 개신교회가 영성의 시대를 맞으며 영성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에서 19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영성에 대한 관심이 시작과 함께 식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을까? 영성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영성의 전문가들은 아직 배출되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가 공부하던 1990년대만 해도 미국의 주류 신학교들이 영성을 신학의 독립된 영역으로 분류해 가르치지는 않았다. 가톨릭과 연관된 개신교 신학교와 일부 선구적인 안목을 지닌 신학교들만 영성을 독립된 신학의 전공영역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연히 미국에서 수학한 한국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 중에 영성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해 지도해 줄 사람이 없던 시대였다. 물론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개인적으로 영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영성훈련을 실천하며 깊은 영성을 형성한 목회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영성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들을 지도하기에 미흡했을 수도 있다.

그럼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이제는 영성을 학문적으로 공부한 학자들도 있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영성훈련을 실천해 온 많은 목회자들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영성에 대한 통일된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독자들도 느끼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학자들마다 영성의 정의에 대해 다소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영성에 대한 정의, 영성형성의 개념, 그리고 바람직한 영성의 열매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먼저, 영성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영성이란 무엇일까? 영성에 대한 정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의의 하나는 샌드라 슈나이더스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20세기 후반에 가톨릭 여성 신학자로 미국의 버클리 대학을 포함한 신구교 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기독교 영성학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한 샌드라 슈나이더스는 영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영성이란 한 개인이 인식하는 궁극적 가치의 지평을 향한 자기 초월을 통하여, 삶의 통합을 위한 과제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이다.”

이것은 기독교 영성의 범위를 넘어 일반적인 영성의 정의를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종교 또는 불신자들도 동의할 수 있는 영성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편, 가톨릭학자인 조던 오먼은 영성신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성신학은 신적인 계시 진리와 개개인의 종교 체험에서 시작하여, 초자연적인 생활의 본질을 밝히고, 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지침을 규정하며, 영성 생활의 시초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영혼들의 진보 과정을 설명하는 신학의 한 영역이다.”

기독교적 영성에 대해 학문적으로 균형 잡힌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목회자들이나 일반 신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의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영국의 성공회 신학자인 필립 셀드레익의 견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셀드레익은 영성이란 요약해 말하면 “성령 안에서의 삶”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이것은 기독교 영성의 모델인 예수님의 영성을 표현하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다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서 우리는 세 가지 영성의 차원을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영성이란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눅 4:18-19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당신의 사역 방침을 선포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공생애 취임사처럼 예수님은 성자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삶을 추구하셨음을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영성형성(spirituality formation)이 중요한 이유이다. 영성형성이란 성령의 임재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그 결과 성화되고 성령 안에서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기 위해 기도를 우선하는 훈련된 삶을 사셨다. 기독교 영성에서 영성훈련이 중요한 이유이다. 셋째, 예수님은 그러한 삶의 귀결로 통전적 영성(wholistic spirituality)의 열매를 보여 주셨다. 다른 말로, 전도, 은사, 사회봉사와 사랑의 삶을 사셨던 것을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기독교 영성이란 “성령 안에서의 삶을 의미하며 그러한 삶을 위해 성령의 임재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영성훈련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훈련의 결과로 영성이 형성되어 통전적 영성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번 한 주도 예수님을 본 받아 영성이 형성되고 통전적 영성의 열매를 맺기를 소망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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