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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3·1절 설교> 현대인의 독립 운동 참여 (에베소서 2:11-22)백낙준 박사(1896-1985, 연세대 총장, 문교부장관 역임)
1973년 창천교회에서 열린 3·1운동 54주년 기념예배서 설교하고 있는 백낙준 박사.

<이 글은 1973년 창천교회에서 열린 3·1운동 54주년 기념예배의 설교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과 예수를 믿은 후에 우리의 신분이 변하였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방사람도 아니요, 손님도 아니요, 우리가 소망이 없는 사람도 아니요, 전부가 다 지금은 성도와 같은 ‘시민’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당시 바울이 살던 때와 역사상으로 보아 시민이라면 특별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와 같은 때는, ‘시민’이란 ‘국가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요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다 노예들이었습니다. 로마국이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난 후, 흥하여 국위를 선양하던 때에 로마 사람들은 다 ‘시민’들이요, 그 외에 아프리카와 유럽 서쪽에서 잡아온 사람들은 다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신분이 예수를 믿은 후에 ‘시민’이라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54년 전에 있었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이 독립운동 사건이 있은 후부터 우리 한 민족은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독립 선언문 벽두에 선언한 것이 “오등은 자에 조선 민족이 자유민임을 세계에 선언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전에는 우리가 자유민 노릇을 못하였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서 순종하는 백성에 지나지 못했지만, 독립 운동이 있은 후로부터 우리는 시민이 되었고 동시에 나라는 임금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닌 국민의 나라요, 국민은 나라의 주권을 가진 나라의 주인들이 되었습니다. 이 관념이 3·1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정하게 된 근원도 바로 3·1운동으로부터 찾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독립선언을 한 지 벌써 5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운동에 현대의 우리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이 4가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활동하고 살아야만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모두 다 도의의 강한 힘을 믿는 줄로 압니다. 위력의 시대는 병력이나 군력으로써 모든 일을 할 수 있겠지만, 도의의 시대는 물리적 힘으로써는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독립선언서에서 말함과 같이 도의의 시대에 우리의 가진 힘은 정의의 군과 인도의 간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도의의 시대를 세상에 임하게 하려면 군력·강력·폭력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의와 인도로만이 도의의 시대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 생활에서도 모두가 다 정의와 인도를 위해서 살아야만 지나간 3·1운동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며, 이 새 시대를 이 사회와 우리 국가에 맞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의 군사와 인도의 무기를 들고 나아갈 때 우리가 어떤 강한 힘이라도 물리칠 수가 있고, 무슨 뜻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독립 선언을 외친 사람들의 기개요, 그들이 가진 신앙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한 두 마디 더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3·1운동 때에 모이신 분들은 다 종교인들 이었습니다. 기독교인, 불교인, 천도교인이니 만큼 이 분들이 독립 운동을 할 때에 무력으로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분들의 힘은 오직 정의의 힘으로써 나아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것을 무저항주의라고 하겠지만, 이 분들의 생각에는 이것이 초저항이라는 것입니다. 무저항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강할 때 나는 약하니까 저항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초저항이라는 것은 저 사람이 강하지만 내가 가진 힘이 저 사람이 가진 것보다 더 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저항할 때에는 단지 내 신분이 낮아지기 때문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옳고 바른 것을 내세우지 못하고 무력으로써 진압하려는 사람을 우리는 상대하지 않는다고 하는 차원 높은 입장과 고상한 이상으로써 일본 사람에게 했던 그것을 초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열들은 이렇게 차원 높은 입장에서 초저항적으로써 일본 사람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너희의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 벗어주고, 왼편 뺨을 때리면 바른편 뺨을 대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무저항주의라고 말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예수께서 가르치신 생각은 그보다 차원이 높은데서 말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자기의 해야 할 본분만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며, 자기의 본분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복을 끼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일은 무저항주의와 같은 약한 것이 아니라 저항을 초월한 가르침이요,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배우고 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1운동 대해서 한 가지 더 배워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다 하나로 뭉쳤던 때는 제1차적으로는 3·1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합하였기 때문에 비록 일본 사람의 무력은 강했지만, 능히 우리는 정신력으로써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는 핑계가 많습니다. 일정 36년 동안에는 일본 사람만 여기서 다 떠나가면 우리가 다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이 간 후 2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여러 가지 핑계만 대고는 우리의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핑계를 많이 댑니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과실과 부족을 전가시키는 것 보다는, 먼저 우리 자신들이 우리의 할 일을 해야만 새로운 시대·새로운 국가·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선열들의 강했던 애국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했던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다 아실 겁니다. 우리가 3·1 운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크게 두 가지 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에 쓴 문서에 의해서 그 분들이 갖고 있던 정신과 그 분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했었냐는 것을 연구할 수 있으며,다른 하나는, 3·1운동에 참가했던 그 분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독립선언서를 분배하던 사람들과 독립자금을 마련하러 다니던 분들, 일본사람에게 여러 가지 학살을 당하고 매를 맞고 모든 구타를 당하던 그 모든 행동에서, 어떤 정책이 드러났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우리의 선열들 가운데 몇 분을 생각해 보면, 나는 33인 가운데서 몇 분을 친히 알고 있습니다. 가령 이승훈 선생, 양전백 목사, 이명용 장로 이 분들을 이야기합시다. 그 분들이 1911년에 105인 사건으로 다 잡혀가서 일본 사람들에게 무한한 고통을 당했는데도 그 사건을 치르고 나서 몇 해가 지나 독립 운동이 일어나니까 그 분들은 또 참가했습니다. 그 분들은 교회의 목사들, 장로들이지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일마나 뜨거웠던지 자기 개인이 당하는 고초는 개의치 않고서, 한 번 당하고 두 번 당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참가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필주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내가 연세대학교에 올 때는 이필주 목사는 이 교회를 떠나셔서 다른 교회에 시무하고 있던 때에 나는 여러 번 만났었습니다.  오늘날 그의 정신을 여러분들이 이어받으시려는 데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들을 치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3·1 절을 맞이하여 우리의 국민으로서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신생한 사람으로서는 우리의 선도자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지만 3·1운동 있은 이후에는 다 민주국가의 주권자가 된 대한민국의 시민들입니다. 우리가 이 독립 운동에 참가하는 방법은 이 정신을 본 받아서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정신을 갖지 못하고 산다면, 우리가 이 집회를 몇 번이나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독립 운동에는 참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말씀 더 드리자면, 독립 선언서의 맨 끝에 있는 “조선 민족 대표”라는 인상적인 말씀입니다. 조선 민족 대표 33인 말입니다. 그럼 그 때 33인은 누가 택했습니까? 대표를 택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33인의 이 분들은 자기들이 자진해서 조선 민족의 대표로 나섰습니다. 그네들은 자기들이 주창하는 그것이 온 백성의 소원인 줄로 확실히 알고 믿었기 때문에, 누가 자기들을 투표로 조선 민족 대표로 택해 주지 않았더라도, 자기들이 담대하게 대표라고 나섰고 또한 이들 대표가 나서서 명령을 내릴 때에는 온 국민들은 그들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국민을 대표하는 종들이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참 대표자는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국민의 가슴 속에 막혀 있는 그 사건의 요구가 무엇인줄을 알고 그 소원을 옳고 바르게 발표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대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소위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먼저 위로는 하나님의 뜻을 본받고 아래로는 가슴속에 있는 대중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서 발표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표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자유민이 되는 훌륭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의 자유민은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느니만큼 이 권리를 누림으로써 독립 운동에 참가하는 국민이 되어 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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