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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함성을 기억합니다”사진과 글로 미리 만나는 서울연회 ‘만세길’ 코스
서울연회(원성웅 감독)는 삼일절인 내달 1일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기념예배를 드린 후 이화여고에서 지금은 사라진 옛 동대문교회 터까지 걷는 ‘만세길 걷기’를 통해 만세운동을 재현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감리회본부와 각 연회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이중 서울연회(원성웅 감독)는 삼일절인 내달 1일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기념예배를 드린 후 이화여고에서 지금은 사라진 옛 동대문교회 터까지 걷는 ‘만세길 걷기’를 통해 만세운동을 재현한다.
서울연회의 ‘만세길 걷기’ 코스는 이화여고 → 배재학당(배재빌딩) → 정동제일교회 → 대한문/남대문/상동교회 → 광화문 감리회본부/종교교회 → 서울YMCA → 탑골공원 → 옛 동대문교회 터까지이다. 동대문교회 터에서는 ‘성지 회복식’이 진행되는데, 이는 서울시의 공원화 작업으로 사라진 동대문교회 기념예배당 회복과 잃어버린 신앙과 역사유산 회복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만세길 하나
이화여자고등학교 유관순기념관

이화여고는 1886년 미국 북감리교회 스크랜튼 선교사에 의해 창립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다. 1887년 고종 황제로부터 ‘이화학당’이란 교명을 하사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화여고는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학교이다. 이화여고는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해 재학 중이던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유관순 기념관을 건립했다. 2층에는 유관순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만세길 둘
배재학당

배재학당은 1885년 8월 미국 북감리교회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했으며 1886년 고종 황제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 받았다.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한 선교계 최초의 사립학교이기도 하다. 3·1운동 당시 배재학당 교사 김진호와 학생 장용하·오흥순·김동혁·임찬준·허신·고희준·조진호·김택영이 미국·영국·러시아·중국 영사관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만세길 셋
정동제일교회

1885년 10월 11일 창립된 정동제일교회는 아펜젤러 목사의 집례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했다. 3·1운동 당시 정동제일교회는 독립운동과 학생운동의 지대한 역할을 했다. 3·1운동을 며칠 앞둔 2월 27일 이승훈·박희도·이갑성·오화영·이필주·함태영·최성모·김창준·신석구·박동완 등 기독교 대표들은 당시 정동제일교회 담임이었던 이필주 목사 사택에서 천도교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초안을 회람하고 3·1운동 동참을 결의했다. 또한 2월 26일에는 강기덕(보성전문학교) 김원벽(연희전문학교) 등 학생대표들이 이곳에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기도 했다.

만세길 넷
덕수궁 대한문/숭례문(남대문)/상동교회

3·1운동 당일 학생그룹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거리로 나가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혹은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상경한 일반 민중들이 가세하며 만세운동의 열기가 고조됐다. 시위대의 일부는 보신각을 거쳐 숭례문 쪽으로, 다른 한편은 덕수궁 대한문으로 향해 만세운동을 이어나갔다.
3월 5일에는 연희전문·배재·이화 학생들과 상동교회 청년들이 숭례문(남대문) 일대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했는데, 이는 독립만세 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만세길 다섯
감리회본부/종교교회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중 김창준·박동완·박희도·신석구·신홍식·오화영·정춘수·이필주·최성모 등이 감리교인이었을 정도로 감리교회는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교회 중 하나이다. 서울연회는 ‘만세길 걷기’ 행사 중 감리회본부에서 ‘3·1운동 100주년 선언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종교교회는 대한독립청년단의 서울 근거지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중심이다.

만세길 여섯
서울YMCA

서울YMCA는 1903년 10월 28일 전신인 황성기독교청년회로 창립됐다. 서울YMCA는 태동에 민족운동단체조직에 대한 염원을 있었기에 초창기 을사조약 반대, 고종양위 반대 운동 등을 벌였으며 친일조직인 일진회와 대결해 가는 가운데 항일운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이상재, 김정식, 윤치호 등 민족지도자를 비롯한 기독교 지식인 대거 가입하며서 민족운동체로서의 조직을 공고히 하게 됐다.

만세길 일곱
탑골공원

탑골공원은 3·1만세운동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식 장소를 태화관으로 변경하자 학생대표들이 항의 한 후 탑골공원에서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학생대표들은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종로를 거쳐 덕수궁 대한문으로 행진했다.

만세길 여덟
동대문교회 터

동대문교회는 헐버트 선교사와 손정도 목사, 김상옥 열사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곳이며 일제강점기에는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해 수많은 고난받던 이들이 위로를 받던 곳이었다. 3·1운동 당시에는 시위군중이 동대문으로 도착하자 동대문교회 교인들이 시위에 합류했다. 또한 박자혜 간호사를 비롯한 ‘간우회’는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부상자를 치료했다.
한편 이 자리에 있던 동대문교회 예배당은 서울성벽 복원 이유로 안타깝게 헐렸다. 서울성곽공원으로 재탄생된 이곳에서는 동대문교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성벽 뒤편으로 보이는 모 교회의 십자가가 왠지 얄밉게 느껴졌다.

김준섭 기자  joon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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