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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바르게 고쳐야 한다1020호 사설

또다시 감독회장 선거무효 판결이 나왔다. 참담하고 무거운 마음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일 년 전 상황과 같아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 년 전에는 서울남연회의 선거권자 확정 절차의 하자만이 문제가 됐는데, 이번 판결은 거기에 더해 전명구 감독회장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와 이철 당시 후보자의 피선거권 하자를 모두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법원이 교회법을 강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결국은 사회법의 권위로 교회법의 적용기준을 멋대로 좌우한 것 같아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된 선거권자의 확정이나 피선거권 문제 등은 사회 통념이 아니라 철저하게 감리교회가 정한 법에 따른 기준과 절차대로 하는 것이다. 법원이 그 하자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장정에 정해진 교회법을 강변하다가 ‘선거후 90일 이내’라는 공소시효의 부분만은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장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판결한 대목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금품 수수 등 선거 불법 시비와 관련해서도 감리회 선거는 공법상 선거가 아니라고 해놓고 내용을 다툼에 있어 마치 공직선거법을 다루듯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거나 일방의 주장만을 받아들인 것은 법원의 판단에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법원의 탓을 하기 이전에 이런 상황을 만든 우리 안의 책임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아직은 1심 판결에 불과하니 섣부르게 판단하고 누군가의 책임을 단죄하기는 곤란하겠지만 우선은 두 번씩이나 선거무효 판결의 결정적 원인이 된 서울남연회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번 판결에 추가된 것처럼 피선거권이 없음에도 선거에 출마한 이철 목사나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금권선거가 문제가 된 전명구 감독회장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항소 과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진실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못하면 말로만 떠돌던 금권선거의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하는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걸음 물러나 생각하면 이번 참사의 책임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모두가 그동안 저질러온 누적된 잘못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해서 우리안의 적폐積弊가 이번 참사를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대충’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답습해 온 우리의 모습, 지방경계를 법으로 정해놓고도 친소관계나 편의에 따라 ‘대충’ 적용해 온 잘못, 자신의 하자를 알면서도 태연하게 선거에 나온 이도 문제지만, 그런 것을 걸러내야 할 선관위가 책임을 방기放棄하고 친분관계 때문인지 온정주의 때문인지 ‘대충’ 선거를 진행한 것도 큰 잘못이며 결국에 문제가 된 것이다.  

선거무효에 대한 논란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선거무효 판결도 두 번씩이나 나왔지만 그 원인이 된 부분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의 불행이다. 대중의 관심이 오로지 감독회장의 지위 여부, 직무대행은 누가 되고 재선거는 언제 실시될 지에 치중하는 것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선거 무효 여부에 대한 최종 판결과 관계없이 법원이 지적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심사숙고 하고 잘못된 부분들을 고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선거권자 선정 및 피선거권 기준은 법대로 철저하게 해야 한다. 늘 논란이 되는 불법 선거운동 규제나 이번에 법원으로부터 묵살당한 공소시효 문제 등은 재점검하고 정비해야 할 부분이다.
한편으로는 선관위가 제 기능을 철저하게 수행해야 하며 사후 발생하는 문제를 처리할 재판 부서도 공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총특심이 선거와 관련한 시비 대부분을 불기소 처분으로 봉합하고 있다는 소식은 아쉬운 대목이다. 분란을 없애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으면 또다시 사회법에 의존하는 불상사를 막을 길이 없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자꾸 맴도는 감리교회의 현실이 답답하다.  

우리 옛 속담에 망우보뢰亡牛補牢, ‘소 잃고 외양만 고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현대의 해석은 많이 달라졌다. 소설가 박완서는 소설어사전에서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시대는 소를 잃고도 아무것도 안 하는 이가 최악의 유형이라 말한다. 

감리교회의 외양간은 몇 마리쯤 소를 잃어야 고쳐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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