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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상식으로 북한 상대는 곤란”단독 인터뷰 - 북한 억류됐던 김동철 목사

굶주린 북한 주민 위해 사업가로 들어간 뒤
미국인으로 17년간 북한 거주하며 첩보활동
2년 8개월 수용소 생활하다 지난해 석방돼
“앞으로 북한 실상 알리고 인권운동 하고파”

미국인으로 17년간 북한 거주하며 첩보활동, 2년 8개월 수용서 생활하다 석방된 김동철 목사.

지난해 5월 세계의 눈은 북한에서 첩보활동을 하다 발각된 뒤 2년 8개월간 수용소 생활을 하다 극적으로 석방된 김동철이란 인물에 쏠렸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인 사업가의 신분을 갖고 북한에 들어가 17년을 살았던 김동철. 그는 어떻게 북한을 가게 되었으며, 무슨 일을 했을까? 또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본지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편집자주>

김동철. 세상은 그를 사업가라고 소개하지만 그는 목사다.

한국에서 태어나 27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빌딩관리 매니지먼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했으며, 달라스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됐다. 중국에서 조선족과 결혼한 뒤 2001년부터 북한과 사업을 하는 기회를 얻게 된 그는 노동당 소속 통일전선부 해외동포사업처의 초청을 받아 투자자로 활동하다가 2004년부터는 함경북도 나선시 경제특구 개발연구원으로 임명을 받아 외국인신분으로 북한에 거주하게 된다. 경제특구라고는 해놨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 해외투자를 받아 건물과 공장을 세우고 장마당을 활성화하면서 그는 김일성과 김정일로부터 훈장을 받으며 북한에서의 삶을 이어갔다.

 북한에는 교회가 없다

김동철 목사는 처음부터 첩보활동을 위해 북한에 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업가로 북한에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기관이 접촉을 해왔고,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의 개인적인 관심은 첩보가 아닌 북한주민에게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사업가로 북한 땅에 있었지만 목사인 그는 당장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주민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면서 그들을 돌보는 것이 자신이 일이라고 느끼고 북한 땅에서 자신만의 목회를 해갔다.

그를 만난 기독교인들은 북한에서 직접 복음을 전했는가를 가장 먼저 물어오는데, 그는 “북한에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명료하게 답을 내놨다. ‘예수’ 얘기만 꺼내도 잡혀가고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고, 나만이 아니라 전도를 받은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이 신이었고 그외의 신은 존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김 목사는 또 북한에서 17년을 살았지만 북한 내에 지하교회가 있다거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혼자서 신앙을 지켜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에서의 종교생활이 워낙 은밀하게 이루어지기에 그가 다 알 수는 없다는 전제이기는 해도 선교적 촉을 세운 채 그가 북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다.

김동철 목사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도 모두 가봤지만 보여주기를 위한 위장신자일 뿐 실제로 그 곳에서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수용소에서의 2년 8개월

2013년도 말경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권을 잡게 되었을 때였다. 김동철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던 두만강호텔의 식당에 지인과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김정은에 대해 “나이도 어린데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라는 말을 했고, 이를 듣게 된 직원들이 신고하면서 그에 대한 조사가 심층적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북한사회였고, 외국인인 그에 대한 감시망도 늘 있었다고도 했다.

17년간 함께 한 북한의 주민과 북한에서의 친구들도 그의 활동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김 목사 역시 그들과 등을 돌리는 것이 유일하게 우정을 지키는 길이었다.

결국 그의 첩보활동이 조사를 통해 드러났고 핵 관련 자료와 군사기밀을 빼돌리고 내란음모와 최고존엄모독, 체제붕괴유언비어 등이 그의 죄목에 덧붙여졌다. (김동철 목사는 자신이 했던 첩보의 자세한 활동과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공포를 고스란히 느꼈다고 했다. 북한의 체제 안에 꼼짝없이 갇힌 이 이방인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사를 받으면서 건너편 방에서 들려왔던 미국인 청년 웜비어(미국으로 송환된 뒤 사망)의 고문소리를 들어야 했고, 자신 역시 고문을 받으면서 온 몸이 망가졌고 이가 빠질 만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2년 8개월 동안의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은 끔찍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북한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미국인으로 자신은 최고의 반역자였고 특대형 범죄자로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다행히 그동안 북한을 위해 한 일들이 참작이 되어 형은 줄어들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극적으로 풀려난 김동철 목사. 지난 1년간 그는 몸을 추스르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수용소의 생활은 그만큼 고됐다. 80그램씩 주는 밥을 먹고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고, 추위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한 번 들어오면 살아나갈 수 없는 그 곳에서 살아나온 것만도 기적이었다. 말 한마디 입 밖으로 낼 힘조차 없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건강이 많이 회복됐지만 여전히 고혈압과 당뇨, 허리협착증 등 수용소의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이 준 병들은 떠나지 않고 있다.

“북한과 담을 쌓아라”

그는 이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일생을 담은 자서전을 쓰는 일을 진행중이다. 이 안에는 김동철 목사의 미국생활과 북한에서의 삶, 그가 만난 북한의 사람들과 느낀 체제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그리고 북한을 연구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며, 바른 관계를 정립해나가기 위해 ‘남북미중 평화전략연구소’를 설립하고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북한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는 부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국내 안에서의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으며. 바른 대북정책이 수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는 26-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그는 “김정은이 트럼프에 의해 신이 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위협할 수 있다고 여기는 김정은에 대해 “성경적으로 말하면 루시퍼와 같다”고 해석했다.

미국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역시 미국과 북한이 의견을 잘 맞춰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내용만으로는 좋지만 “한국정부의 무장해제를 원하고 있는 김정은의 속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북의 ‘비핵화’역시 말로는 안 되고, 정확한 증거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하게 언급했다.

통일에 대해서도 김동철 목사는 “현재 대한민국이 생각하는 통일은 망상 속에 있는 것”이라면서 북한을 우리의 상식과 우리의 방법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걸음 다가왔다가 다시 대화의 창을 닫고 뒤돌아서는 북한에게 미련을 갖고 미끼를 주는 것은 북한의 계략에 놀아나는 것과 다름없다는 김 목사는 “북한의 방식으로 북한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답을 내놨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대북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김동철 목사는 “북한에서의 선교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 정답”이라면서 “만일 교회가 구제사업을 하려면 그냥 주는 것으로만 만족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통일 후를 준비한다며 헌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한국교회가 교회와 성도가 신앙을 깊게 하며 그 어떤 미래가 다가온다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에서 17년간 굶주린 주민들을 돕는 일이라면 북이 요구하는 나무 그물 등 갖가지 물건을 위험을 무릅쓰고 밀수형식을 취해서라도 가져다준 그는 결국 “담을 쌓고 살라”고 했다. 무슨 말일까?

“북한이 많이 변화됐다고 생각하는데, 보여지는 것은 현상일 뿐입니다. 김일성 김정일과 다른 행보를 걷는 김정은의 행동은 자신의 정치치세를 위한 것이지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의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지만 그의 말 속에는 북에 대한 연민이 늘 깔려 있었다. “그 사람들과 살아오고 경험을 갖다 보니까 한국도 내 조국이고 미국도 조국이고, 북한도 조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그 중에서 북한이 가장 밉고, 또 가장 애틋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대는 것처럼, 김 목사는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 북한과 담을 쌓아야 한다고 애써 강조했다.

“도덕적 인간이 나쁜 사회를 만든다는 말이 있듯 우리의 선한 마음이 북한을 더욱 나쁜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 목사는 기독교인인 우리 역시 “성경 속에서 사랑의 예수을 기억함과 동시에 동시에 오직 징벌로 말씀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정확한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혜은 기자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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