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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운동 헌신한 3‧1운동 숨은 주역한학자‧목회자‧독립운동가 김진호 목사
3‧1운동 당시 배재학생들과 만세 운동
손자 김주황 목사가 문집 펴내 재조명
애산 김진호 목사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당시 배재학교 학생들과 함께 정동 부근 외국영사관에 독립선언서를 돌리고 만세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김진호 목사를 기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19일 경기연회 용인서지방 애산교회(담임 김주황 목사)에서 열린 행사는 김진호 목사의 문집 ‘민족운동과 삼일운동’ 출판 감사예배와 관련 자료 등 유물 전시회로 꾸며졌다.

이날 예배는 신동수 목사(아멘교회)의 기타연주와 성신여대 영상미디어과 전선우 학생의 한시 낭독으로 시작돼 경기연회 삼일운동 100주년기념사업 준비위원장 곽일석 목사의 기도와 빛의 교회 원로 오세종 목사의 설교 등으로 진행됐으며 협성대학교 역사신학 교수인 서영석 박사가 ‘애산 김진호 목사’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축하연주 뒤에 ‘사진으로 보는 애산의 삶’과 경기연회 김학중 감독의 영상 축사, 김완중 목사(경기연회 감신동문회장)와 이경옥 목사의 추천사 등이 이어졌다.

또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이종찬 씨와 상동교회 담임 서철 목사, 고향 상주에서 올라온 김상진 씨와 한문 번역자 송병혁 목사의 축사 등이 있었다.

신동수 목사(아멘교회 담임)의 기타연주와 성신여대 영상미디어과 전선우 학생의 한시 낭독

경기연회 삼일운동 100주년기념사업 준비위원장 곽일석 목사

축하 인사를 전하는 서철 목사

참석자들은 예배를 마친 뒤 김진호 목사의 손자인 김주황 목사의 안내로 김 목사가 남긴 배재 학교와 목회 당시 역사 사진, 옛날 책과 유품 등을 관람했다. 이 전시회는 이달 말까지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협성대 서영석 교수가 손자 김주황 목사의 안내로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애산(愛山) 김진호 목사는 한학자로, 애국자로, 교육자로, 목회자로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1873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으며, 가난한 가정을 돌보기 위해 1899년 서울로 상경해 생활하다 1905년 을사늑약을 경험하고 좌절하던 시기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를 만나 기독교로 개종 1907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이후 전덕기 목사의 사택에 기거하며 상동청년학원에서 애국지사들과 함께 청년들을 가르쳤고, 신민회에 가입 비밀 연락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14년 전덕기 목사가 지병으로 사망한 후에는 전도사로 상동교회 일을 돕다가 1916년 당시 배재학교 교장이던 신흥우 목사의 요청을 받아 교사로 일하면서 전도사로 정동교회를 섬겼다.

1919년 3‧1운동 때는 당시 정동교회 담임인 이필주 목사의 요청으로 배재 학생들을 동원 정동부근의 외국영사관에 독립선언서를 돌렸으며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돼 둘째 아들과 함께 서대문 감옥에 투옥됐다. 1937년 이후 목회에 전념하였고 6‧25전쟁과 1‧4후퇴를 겪으면서 부산에 정착 은퇴하였다. 애산은 이같은 공로가 인정돼 1998년 건국 50주년을 맞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애산의 손자인 김주황 목사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출판한 문집 ‘민족운동과 삼일운동’은 한시집 빙어, 병중쇄록, 일기, 설교 등 여러 문집에서 모은 애산의 글로 채워져 있다.

그가 기록한 빙어 한시집 서문에 그가 서대문 감옥에서 지내던 일과 그 곳에서 지었던 한시가 있다. 또 평생에 걸쳐 쓴 일기, 설교집, 병중쇄록, 임하춘추 기록에서 민족운동과 삼일운동 자료 등을 엿볼 수 있다.

출판된 문집 '민족운동과 삼일운동'
행사를 마친뒤 참석한 내빈들의 기념촬영

 

 

가한나 기자  hanna@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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