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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보자기가 필요하다1022호 사설

과거 독재정부 시절에는 위기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것이 색깔론이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란 씁쓸한 유행어처럼 반대파에 대해 걸핏하면 ‘빨갱이’라는 사상의 굴레를 씌워버렸다.

그런데 색깔론에 가장 큰 피해자라는 소위 민주화 진영이 최근 보여주는 행태는 또 다른 모습의 ‘색깔론’을 휘두르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걸핏하면 상대방을 ‘적폐’로 몰더니, 3·1절 100주년을 즈음해서는 또다시 친일파 공세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다. 북미 정상회담 실패가 일본 탓이라는 희한한 주장이 정부 주변에서 나오는가 하면 반공을 말하면 마치 친일파처럼 매도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각설하고 친일파가 반공을 이용해 살아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공이 곧 친일이란 도식은 동의하기 어렵다. 극심한 좌우 이념대결과 한국전쟁을 겪은 암울한 역사를 기억해 볼 때 그렇게 쉽게 국민들의 반공 정서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해방 이후 친일파가 여전히 득세하며 부와 권세를 누린다거나, 독립유공자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 후손들은 어려운 살림을 이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송구하고 부끄러운 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책임이 오로지 친일파에 있는 것은 아니며 70년이 지난 문제를 정부가 들쑤셔 국민의 절반 이상을 마치 친일파처럼 매도하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친일파와 독립유공자의 문제는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 강조한 것이 정론이라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이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며 그 책임과 의무는 누구보다 먼저 정부 당국에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체조차 모호한 친일파 타령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넣었다 뺐다 반복하며 국론을 헤집어 놓을 것이 아니라 독립유공자들을 마지막 하나까지 찾아내 예우하고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이뤄질 때 대통령의 말처럼 친일은 부끄러운 역사가 되고 당사자 혹은 후손이 역사 앞에 반성하게 된다. 말로는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후손을 찾아 제대로 예우하는 일은 국가의 책무”라면서 실제로는 유족이 발 벗고 나서서 자료를 찾아내고 들이밀어야 겨우 공훈을 인정받는 부끄러운 민낯부터 고쳐야 한다. 친일파나 독립유공자의 문제를 뺄셈의 논리로 풀려하지 말고 덧셈의 논리로 접근해 달라는 당부다. 

최근 곳곳에서 논란이 되는 4대강 보 해체문제도 그렇다. 과거 정부의 잘못을 부각시키려고 무리한 뺄셈을 강행하기보다 현실과 여론을 경청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기왕이면 덧셈의 판단이 필요하다.  

자주 논란이 되는 수도권 과밀해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강제로 학교를 이전하고 기업체를 이리저리 옮긴다 한들 상황은 별로 달라질게 없다. 정부 청사 이전도 공무원들만 힘들게 만들고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뿐 인구 분산의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먹고 살기 좋은 도시가 만들어지면 가지 말라 해도 자연스럽게 인구는 이동하게 돼 있다. 정부가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것은 그 부분을 어떻게 풀어갈지 하는 덧셈이 돼야지 서울이나 수도권을 해체하고 반강제로 이주를 권하는 뺄셈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없애고 균형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쪽을 빼내서 손쉽게 해결하려들다가는 공생이 아닌 공멸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잘라서 맞추려 하지 말고 더해서 맞추는 쪽으로 시각을 바꾸자는 얘기다.

미국 연합감리교회가 최근 특별총회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문제는 당초 예상과 달리 ‘허용’이 아니라 ‘금지’라는 전통모델이 채택된 것이다. 보수계의 이탈을 우려하던 상황이 이제 정반대로 뒤집어져 진보계의 이탈이 염려되는 상황이 됐다. 갈등과 분열의 위기가 여전한 상황에서 공감 가는 글 하나가 눈에 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의 줄자와 삭둑 잘라내는 가위가 아니라 보듬어주는 ‘보자기’입니다.”

답답한 한국의 정치 현실, 그것보다 더 답답한 한국감리교회의 현실에서 우리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미로를 헤매는 감독회장 선거 문제도 그렇고 올해 입법의회를 앞두고 관심을 모으는 개혁문제도 그런 시각에서 풀어가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줄자와 가위로 누군가를 비판하고 잘라내려는 뺄셈이 아니라 기왕이면 서로를 보듬어 주는 보자기, 격려하고 응원해 함께 힘을 보태는 덧셈의 정치를 감리교회 안에서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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